기증자의 피를 직접 섞지 않고도 이식 가능 여부를 알 수 있다?: Virtual Crossm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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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이식을 준비하다 보면 혈액형, HLA, 항체, 교차시험까지 여러 검사를 차례로 거치게 된다.
그런데 이식팀이 새로운 공여자 후보를 만났을 때, 아직 실제 교차시험조차 하기 전인데도 “이 공여자는 위험할 것 같다”거나 “이 공여자는 해볼 만하다”는 판단이 먼저 나오는 경우가 있다.
두 사람의 검체를 실제로 섞어보지도 않았는데, 대체 어떻게 미리 알 수 있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 답은 Virtual Crossmatch, 우리말로 흔히 가상 교차시험이라 부르는 방법에 있다. 
이식 전에 두 사람의 피를 섞어보는 이유: Crossmatch, 교차시험이란?에서 설명한 실제 교차시험처럼 두 사람의 검체를 직접 반응시키는 대신, 이미 확보되어 있는 정보들을 컴퓨터로 대조해 결과를 미리 예측하는 과정이다.

실제 교차시험은 왜 매번 하기 어려울까?

전통적인 교차시험은 수혜자의 혈청을 공여자의 실제 림프구와 반응시켜, 세포가 손상되는지 항체가 달라붙는지를 직접 확인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 공여자의 살아있는 세포 시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뇌사자 공여 신장처럼 시간이 생명인 상황에서는 장기가 몸 밖에 있는 시간, 즉 허혈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식 후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어 검사에 쓸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제한적이다.
게다가 이식 대기자 한 명에게 여러 공여자 후보가 차례로 나타날 수 있는 상황에서, 후보가 나올 때마다 매번 실제로 검체를 섞어 결과를 기다린다면 그 자체로 큰 지연이 된다.

Virtual Crossmatch는 무엇을 다르게 볼까?

Virtual Crossmatch의 핵심은 공여자의 세포가 아니라 수혜자가 이미 가지고 있는 항체의 목록에서 출발한다는 데 있다.
수혈이나 임신, 과거 이식을 겪으면 특정 HLA를 표적으로 하는 항체가 몸에 남을 수 있다는 점은 장기를 공격하는 HLA 항체는 왜 이미 내 몸에 있을까?: 수혈·임신·과거 이식이 남기는 면역의 기억에서 다룬 바 있다.
이식 대기자로 등록되는 시점부터 병원에서는 Single Antigen Bead(SAB) 검사라는 정밀한 방법으로 이 항체들을 미리 분석해 둔다.
HLA 항원 하나하나를 코팅한 미세한 구슬에 수혜자의 혈청을 반응시켜, 이 사람은 A2, B7, DR15 같은 특정 HLA에 대한 항체를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매우 구체적인 항체 지도를 만들어내는 검사다.
즉 공여자를 만나기도 전부터, 수혜자의 면역계가 어떤 HLA를 위험한 대상으로 기억하고 있는지가 이미 목록으로 정리되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어떻게 예측하는 걸까?

새로운 공여자가 나타나면 먼저 그 공여자의 HLA 타입을 검사한다.
그 다음 컴퓨터 시스템이 수혜자가 이미 가진 항체 목록과 공여자의 HLA 타입을 대조한다.
공여자가 가진 HLA 중 하나라도 수혜자의 항체 목록에 있는 표적과 일치한다면, 실제로 검체를 섞지 않고도 이 조합은 양성, 즉 위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판단할 수 있다.
반대로 겹치는 항목이 없다면 음성으로 예상된다고 판단한다.
말 그대로 실험을 실제로 해보는 대신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대조해 결과를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라 가상(virtual)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과정에서 병원은 수혜자마다 받아들일 수 없는 항원 목록(unacceptable antigen list)을 만들어 등록해 둔다. 
신장이식은 혈액형만 맞으면 될까?: HLA·항체·교차시험까지 알아보기에서 언급했던 cPRA, 감작도 역시 이 목록을 기반으로 계산되는 지표다.
공여자가 나타났을 때 이 목록에 걸리는 HLA가 있는지만 확인해도 사실상 교차시험 결과를 미리 가늠할 수 있는 셈이다.

왜 이런 방식이 유용할까?

가장 큰 장점은 속도다.
뇌사자 공여 장기처럼 시간이 제한된 상황에서는 실제 검체를 섞어 결과를 기다릴 필요 없이 컴퓨터 대조만으로 즉시 적합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
또한 감작 수치가 높아 맞는 공여자를 찾기 어려운 환자라면, 여러 공여자 후보가 나타날 때마다 매번 채혈해서 검사할 필요 없이 미리 만들어 둔 항체 목록 하나로 계속 대조해볼 수 있어 환자의 부담도 줄어든다.
신장 교환이식이나 국가 단위 장기 배분 시스템에서 짧은 시간 안에 많은 후보를 걸러내야 할 때도 이 방식이 실질적으로 활용된다.

Virtual Crossmatch가 만능은 아니다

다만 이름 그대로 가상의 예측이라는 한계도 분명하다.
이 방법은 수혜자의 항체 검사 결과가 정확하고 최신 상태일 때만 신뢰할 수 있다.
마지막 검사 이후 수혈이나 임신 등으로 새로운 항체가 생겼다면 그 정보는 아직 목록에 반영되지 않았을 수 있다.
또한 SAB 검사는 HLA 항체를 정밀하게 잡아내지만, HLA가 아닌 다른 항체까지 모두 걸러내지는 못한다. 
혈액형도 맞고 HLA도 괜찮은데 이식을 못 할 수도 있다?: HLA 항체란 무엇일까에서 다룬 것처럼, 실제 임상에서는 예측 결과를 절대적인 답으로 받아들이기보다 하나의 강력한 참고 자료로 활용한다.
특히 생체 공여자 이식처럼 수술 날짜를 미리 정해둔 경우에는, 안전을 위해 수술 직전 실제 교차시험을 함께 시행해 최종 확인을 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두 검사는 서로를 보완한다

Virtual Crossmatch는 실제 교차시험을 대체하는 검사가 아니라, 그 앞단에서 시간을 벌어주는 정교한 필터에 가깝다. 
장기이식에서 HLA란 무엇일까?: DNA가 비슷하면 되는 걸까?부터 항체, DSA, 그리고 실제 교차시험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검사들 사이에서, Virtual Crossmatch는 미리 걸러내는 단계를 맡고 실제 교차시험은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단계를 맡는 식으로 역할이 나뉘어 있는 셈이다.
두 방법이 함께 쓰이면서 이식 대기 시간은 줄이고 안전성은 지키는 균형을 만들어가고 있다.

의학 정보 안내
이 글은 건강 및 의학 관련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일반적인 정보이며, 개인의 상태에 대한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관련 증상이 있거나 건강에 대한 우려가 있다면 의료진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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