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이식은 혈액형만 맞으면 될까?: HLA·항체·교차시험까지 알아보기

작성자

카테고리:

가족 중 누군가가 신장이식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고 생각해보자.

마침 건강한 가족 한 명이 자신의 신장을 기증하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혈액형을 확인했더니 똑같다.
A형과 A형.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혈액형도 같은데, 그럼 신장을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실제 신장이식에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혈액형은 분명 중요한 조건이다.
하지만 혈액형이 맞는다는 것은 여러 관문 가운데 하나를 통과했다는 뜻에 가깝다.

실제 신장이식 조건을 확인할 때는 혈액형뿐 아니라 HLA, 수혜자가 가지고 있는 항체, 공여자에 대한 항체가 있는지, 교차시험(Crossmatch) 결과가 어떤지, 그리고 공여자의 신장 자체가 이식하기에 적합한지까지 여러 요소를 함께 확인한다.

쉽게 말하면, 혈액형은 이식 가능성을 확인하는 첫 번째 문이고, 그 문을 통과했다고 바로 수술실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신장이식에서는 혈액형이 왜 중요할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A형, B형, AB형, O형은 ABO 혈액형이다.

적혈구 표면에는 A 또는 B라는 항원이 존재할 수 있고, 혈액 속에는 자신에게 없는 ABO 항원에 반응할 수 있는 항체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O형인 사람은 A항원과 B항원에 대한 항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A형이나 B형 신장을 그대로 이식받으면 강한 면역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신장이식을 준비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ABO 혈액형의 호환성이다.

일반적인 ABO 호환 관계를 공여자 기준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공여자 혈액형일반적으로 신장을 받을 수 있는 수혜자
O형O형, A형, B형, AB형
A형A형, AB형
B형B형, AB형
AB형AB형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둘 점이 있다.
신장이식에서는 혈액형이 반드시 똑같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호환되면 된다.
예를 들어 O형 공여자가 A형 수혜자에게 신장을 기증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ABO 호환 조합이다.
반대로 O형 수혜자는 일반적으로 O형 공여자의 신장을 받아야 한다.
또 수혈에서는 흔히 이야기하는 Rh 양성·음성, 즉 +는 신장이식의 ABO 호환성을 판단할 때는 일반적으로 중요한 조건이 아니다.

따라서 A+인데 공여자는 A−라서 안 되는 것 아닐까라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혈액형이라는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고 나면 조금 더 복잡한 면역학 이야기가 시작된다.

혈액형이 같아도 이식이 어려울 수 있다

예를 들어 공여자와 수혜자가 모두 A형이라고 해보자.

ABO만 보면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 면역계가 다른 사람의 세포를 구별하는 기준은 ABO 혈액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포 표면에는 HLA(Human Leukocyte Antigen)라는 여러 종류의 단백질이 존재한다.

HLA는 면역계가 우리 몸의 세포와 외부에서 들어온 것을 구별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HLA 조합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장기이식에서는 공여자와 수혜자의 HLA 정보를 함께 확인한다.

그렇다고 해서 HLA가 전부 똑같아야 신장이식을 할 수 있다라는 뜻은 아니다.
신장이식에서는 공여자와 수혜자의 HLA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아도 이식이 이루어질 수 있다.

실제로 가족이 아닌 사람 사이의 신장이식이나 뇌사자 신장이식에서는 HLA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다만 HLA 차이가 존재한다면 수혜자의 면역계가 그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해진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항체가 등장한다.

문제는 HLA가 다르다는 것보다 그 HLA를 공격할 항체가 있는가이다

우리 몸은 이전에 접했던 HLA에 대해 항체를 만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 있다.

  • 과거 장기이식을 받은 경우
  • 수혈을 받은 경우
  • 임신을 경험한 경우

이런 과정을 통해 다른 사람의 HLA를 접하면 일부 사람에서는 특정 HLA를 인식하는 항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를 흔히 항-HLA 항체(anti-HLA antibody)라고 한다.

여기까지는 항체가 있다는 사실 자체만 이야기한 것이다.
신장이식을 할 때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그 항체 가운데 지금 이 신장을 주려는 공여자의 HLA를 공격하는 항체가 있는가?”

공여자의 HLA를 직접 겨냥하는 항체를 DSA (Donor-Specific Antibody), 즉 공여자 특이 항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수혜자가 여러 종류의 HLA 항체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 항체들이 현재 공여자의 HLA를 겨냥하지 않는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반대로 혈액형이 정확히 같더라도 수혜자에게 공여자의 HLA를 강하게 인식하는 DSA가 존재한다면 이식 후 항체매개 거부반응의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신장이식에서는 단순히 ‘혈액형이 맞는다 → 이식 가능‘이라는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공여자 HLA + 수혜자 항체’를 서로 대조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HLA 검사에서는 무엇을 보는 걸까?

HLA라고 하면 처음에는 또 하나의 혈액형처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ABO처럼 단순히 A, B, AB, O 네 가지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구조가 아니다.

HLA에는 여러 유전자 자리와 수많은 종류의 대립유전자가 존재한다.
장기이식에서는 대표적으로 HLA-A, HLA-B, HLA-C, HLA-DR, HLA-DQ, HLA-DP와 관련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공여자의 HLA를 확인하고, 수혜자의 HLA도 확인하고, 수혜자가 어떤 HLA에 대한 항체를 가지고 있는지를 검사한다.
그러면 수혜자의 항체 검사 결과와 공여자의 HLA 결과를 서로 비교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이 사람에게 있는 항체가 이 공여자의 HLA를 겨냥하고 있는지를 판단하게 된다.

즉 HLA 검사는 단순히 두 사람의 결과표를 옆에 놓고 몇 개가 같은지 세는 검사가 아니다.
두 사람 사이에 실제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면역학적 조합이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중요한 정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Crossmatch는 실제로 두 사람을 한번 부딪쳐보는 검사다

이식 면역검사에서 매우 중요한 검사 가운데 하나가 Crossmatch, 교차시험이다.
이름 그대로 공여자와 수혜자의 면역학적 반응을 서로 확인하는 검사다.

개념을 단순하게 설명하면, 수혜자의 혈청과 공여자의 림프구를 만나게 해 수혜자의 항체가 공여자의 세포에 반응하는지를 확인한다.

만약 수혜자의 혈액 속에 공여자의 세포를 강하게 공격할 수 있는 항체가 존재한다면 교차시험에서 양성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의미 있는 공여자 특이 HLA 항체 때문에 강한 양성 교차시험이 나타난다면 이식 후 심한 거부반응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

반대로 교차시험이 음성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수혜자의 혈액 속에서 공여자 세포에 강하게 반응하는 항체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좋은 신호 가운데 하나다.
다만 Crossmatch 역시 단순한 양성 = 절대 불가능, 음성 = 100% 안전이라는 식으로 해석하는 검사는 아니다.

어떤 방법으로 검사했는지, 어떤 세포가 반응했는지, 수혜자의 HLA 항체 검사에서 무엇이 검출되었는지 등을 함께 해석해야 한다.
이 때문에 실제 이식 적합성 판단에는 이식 전문의뿐 아니라 HLA 또는 Histocompatibility Laboratory의 검사 결과와 해석이 중요하게 사용된다.

Virtual Crossmatch라는 것도 있다

요즘 장기이식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Virtual Crossmatch다.
이름 때문에 컴퓨터가 실제 Crossmatch를 대신해서 자동으로 판정하는 검사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 개념은 조금 다르다.

이미 알고 있는 공여자의 HLA 정보와 수혜자의 HLA 항체 정보를 서로 비교해 이 공여자에 대해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는 항체가 있는지 미리 평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혜자에게 HLA-A2를 강하게 인식하는 항체가 있고 공여자가 HLA-A2를 가지고 있다면, 실제 세포를 이용한 Crossmatch 결과를 기다리기 전에도 문제가 될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다.
이런 정보는 특히 시간이 중요한 뇌사자 장기이식에서 매우 유용하다.

다만 Virtual Crossmatch와 실제 세포를 이용한 Physical Crossmatch는 서로 완전히 동일한 검사가 아니다.
각 검사 결과와 환자의 항체 이력 등을 종합해서 판단하게 된다.

cPRA가 높다는 말도 여기서 나온다

신장이식을 준비하면서 PRA 또는 cPRA라는 숫자를 듣는 경우도 있다.

cPRA는 수혜자가 얼마나 폭넓게 HLA에 감작되어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이해하면 비교적 쉽다.
예를 들어 여러 종류의 HLA에 대한 항체를 가지고 있다면 자신과 면역학적으로 잘 맞는 공여자를 찾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주의할 점이 있다.
cPRA가 높다고 해서 이 사람은 모든 신장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반대로 cPRA가 낮다고 해서 특정 공여자와 반드시 잘 맞는다는 의미도 아니다.

cPRA는 전체 공여자 집단에서 면역학적으로 맞지 않을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지표에 가깝고, 실제 특정 공여자와의 적합성은 그 공여자의 HLA와 수혜자의 항체를 직접 비교해서 판단해야 한다.

즉, cPRA는 ‘얼마나 맞추기 어려운 환자인가’를 보는 정보이고, DSA와 Crossmatch는 ‘지금 이 공여자와 문제가 있는가’를 판단하는 데 더 직접적인 정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면역학적으로 맞는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여기까지 모든 것이 괜찮다고 해보자.

혈액형도 호환된다.
HLA와 항체 검사에서도 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Crossmatch도 문제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아직 모든 조건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번에는 공여자와 신장 자체가 이식에 적합한지를 확인해야 한다.

특히 생체 신장 기증에서는 공여자의 안전이 매우 중요하다.
공여자의 신장 기능이 충분한지, 두 신장의 구조는 어떤지, 혈관 구조에는 문제가 없는지, 당뇨나 고혈압처럼 앞으로 신장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질환은 없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여러 혈액검사와 소변검사, 영상검사도 시행한다.
신장 기능을 확인할 때 나오는 Creatinine과 eGFR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전 글인 신장 기능 검사 결과 읽는 법: BUN·크레아티닌·eGFR 수치는 무엇을 뜻할까?에서 따로 자세히 정리했다.

또 감염성 질환이나 악성종양 전파 위험은 없는지, 수술을 받기에 전반적인 건강 상태는 적절한지도 확인한다.

뇌사자 신장이식에서도 공여자의 병력과 검사 결과뿐 아니라 실제 신장의 상태, 장기 기능, 해부학적 특성, 보존 상태 등 여러 정보를 이식팀이 함께 검토한다.

결국 이식할 수 있는 신장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하나의 검사 결과가 아니라 여러 정보를 종합한 판단이다.

혈액검사를 그렇게 많이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식 평가를 받다 보면 정말 많은 양의 피를 채혈하는 경우가 있다.

혈액형 검사도 하고, 일반 혈액검사와 생화학검사도 하고, 감염 관련 검사도 하고, HLA typing과 항-HLA antibody 검사도 한다.
필요에 따라 Crossmatch에 사용할 검체도 준비한다.
그래서 이식 환자가 검사실에 가면 여러 개의 채혈관이 필요한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검사 하나마다 반드시 튜브 하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왜 검사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채혈관을 사용하는지는 이전 글인 피검사할 때 왜 피를 여러 튜브에 나눠 뽑을까?: 전혈·혈장·혈청이 필요한 이유에서 기본 원리를 살펴볼 수 있다.

이식검사는 여기에 조직적합성검사와 여러 특수검사가 추가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혈액형이 맞지 않으면 무조건 이식할 수 없을까?

여기서 또 하나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앞에서는 혈액형 호환성이 중요하다고 설명했지만, 현대의 신장이식에서는 혈액형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방법이 Kidney Paired Donation, 즉 신장 교환이식이다.
예를 들어 A라는 환자에게 신장을 주고 싶은 가족 B가 있지만 두 사람이 면역학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해보자.
또 다른 환자 C와 공여자 D도 서로 맞지 않는다.
그런데 B의 신장은 C에게 적합하고, D의 신장은 A에게 적합하다면, 두 공여자가 서로 상대방의 수혜자에게 신장을 기증하는 방식으로 이식이 이루어질 수 있다.

두 쌍을 넘어 여러 명이 연결되는 Kidney Paired Donation Chain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또 일부 이식센터에서는 특정 조건에서 ABO-incompatible transplantation이나 항체를 줄이기 위한 desensitization을 이용해 원래는 면역학적으로 맞지 않는 조합의 이식을 시행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방법은 모든 환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면역학적 위험과 치료의 장단점을 전문 이식팀에서 매우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혈액형이 안 맞으니 방법이 전혀 없다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같은 혈액형인 형제자매라면 잘 맞을까?

가족끼리 혈액형이 같으면 HLA도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어느 정도 관련은 있을 수 있지만 ABO 혈액형과 HLA는 서로 다른 유전 체계다.
따라서 혈액형이 같은 형제자매라도 HLA 조합은 다를 수 있다.

반대로 혈액형이 서로 다르더라도 ABO가 호환되거나 교환이식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식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

특히 형제자매는 부모에게서 HLA haplotype을 하나씩 물려받기 때문에 HLA가 상당히 잘 맞는 경우도 있지만, 형제자매라고 해서 자동으로 HLA가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가족관계나 혈액형만 보고 실제 이식 적합성을 예측할 수는 없다.
이것이 검사가 필요한 이유다.

결국 신장이식에서 무엇이 맞아야 할까?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신장이식은 혈액형만 맞으면 되는 걸까?”

답은 아니다.
혈액형은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그것만으로 이식 가능 여부를 결정할 수는 없다.

조금 단순화해서 순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ABO 혈액형은 호환되는가?
2. 공여자와 수혜자의 HLA는 어떤가?
3. 수혜자에게 항-HLA 항체가 있는가?
4. 그중 공여자의 HLA를 겨냥하는 DSA가 있는가?
5. Virtual 또는 Physical Crossmatch에서 문제가 없는가?
6. 공여자와 신장 자체가 의학적으로 이식에 적합한가?
7. 수혜자가 이식수술과 이후 면역억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상태인가?

이 여러 정보를 종합한 뒤에야 실제 이식 가능성을 판단하게 된다.
그래서 신장이식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Blood Type Match 하나가 아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공여자의 신장이 수혜자의 몸 안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면역학적·의학적 조건을 갖추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혈액형은 그 과정의 시작일 뿐이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가 HLA 검사실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는 이야기다.

의학 정보 안내
이 글은 건강 및 의학 관련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일반적인 정보이며, 개인의 상태에 대한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관련 증상이 있거나 건강에 대한 우려가 있다면 의료진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코멘트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