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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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새로 시작한다고 하면 꽤 멋있는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결심을 하고, 이제부터는 달라지겠다고 마음먹고, 새로운 목표를 향해 힘차게 첫걸음을 내딛는 모습.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에는 자연스럽게 용기나 희망 같은 단어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살아보니 실제로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는 순간은 그렇게 멋있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초라하고, 어색하고, 조용한 경우가 더 많았다.

특히 처음 시작하는 것보다 다시 시작하는 일은 조금 다르다.
처음에는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서툴러도 이상하지 않고, 실수를 해도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번 무언가에 익숙해졌던 사람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하던 일이 이제는 어렵고, 한때는 꽤 잘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다시 누군가에게 물어봐야 한다.
익숙했던 자리를 내려놓고 새로운 곳에 가면 내가 누구였는지는 생각보다 별로 중요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곳에서는 다시 이름을 알리고, 다시 배우고, 다시 증명해야 한다.
예전에 어디까지 올라갔는지와 상관없이 새로운 계단의 첫 칸부터 올라가야 한다.
아마 다시 시작하는 일이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이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과거의 자신이 없다.
하지만 다시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비교할 대상이 있다.
예전의 나.
익숙했던 나.
조금 더 능숙했던 나.
그래서 지금의 서툰 모습이 필요 이상으로 작아 보일 때가 있다.

‘예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별것 아닌 일 앞에서도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다.

다시 시작하면 모든 것이 새로워질 것 같지만 현실은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많다.
새로운 것보다 작은 반복이 더 많다.
다시 이력서를 쓰고, 다시 공부하고, 다시 사람을 만나고, 다시 질문한다.
한동안 하지 않았던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면 예전에 들던 무게보다 훨씬 가벼운 것부터 들어야 할 수도 있다.
오랫동안 놓았던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 몇 페이지 읽는 것만으로도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누구에게도 특별하지 않은 아주 작은 업무부터 맡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순간에는 ‘다시 시작했다’는 거창한 말보다 그냥 오늘 해야 할 일을 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진짜 변화는 대부분 그런 식으로 시작되는 것 같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별로 대단하지 않은 일을 하면서.
눈에 보이는 결과도 없는 상태로.
같은 것을 며칠이고 반복하면서.

처음 며칠은 그래도 의욕이 있다.
새로운 노트를 사고, 계획을 세우고,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겠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특별한 기분이 사라진 뒤에도 계속해야 한다.
어제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오늘에도 다시 해야 하고,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보이지 않는 날에도 한 번 더 해야 한다.

어쩌면 시작이라는 것은 첫날보다 두 번째 날에 더 가까운 말인지도 모르겠다.
첫날에는 누구나 마음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도 다시 앉는 것은 조금 다른 일이다.
그리고 그다음 날에도 또 하는 것.
그 과정에는 생각보다 박수 받을 일이 많지 않다.
누군가는 내가 무언가를 다시 시작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당장 눈에 띄는 결과가 없으니 설명할 것도 없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처음부터 크게 말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번에는 잘될 거라고 자신할 수 없어서일 수도 있고, 지난번처럼 중간에 멈출까 봐 조심스러워서일 수도 있다.
혹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예전에는 결심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무언가가 시작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된다.
결심과 변화 사이에는 꽤 긴 거리가 있다는 것을.

그 거리를 채우는 것은 대부분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
해야 할 일을 하나 끝내는 것.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것.
어제 잘되지 않았던 것을 오늘 다시 해보는 것.
그리고 별다른 성과가 없어도 내일 한 번 더 해보는 것.

돌이켜보면 내가 무언가를 제대로 배웠던 시기에도 처음부터 잘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지금은 너무 익숙해서 잊어버렸을 뿐, 그때도 분명 서툰 시간이 있었다.
모르는 단어가 있었고, 실수도 했고, 남들보다 느리다고 느낀 순간도 있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과정이 기억에서 희미해졌을 뿐이다.

그래서 다시 처음에 서게 되면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미 한참을 걸어온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출발선 근처에 서 있는 것 같으니까.
하지만 생각해 보면 완전히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했던 일이 그대로 도움이 되지는 않더라도 그 시간을 지나며 배운 방식은 남아 있다.

실수했을 때 어떻게 다시 정리하는지.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생각보다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
하루 잘되지 않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한 일은 결국 시간을 지나야 한다는 것.

처음 시작했을 때는 몰랐던 것들을 다시 시작할 때는 알고 있다.
그래서 출발점은 비슷해 보여도 같은 출발은 아닐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 시작할 일이 줄어들 줄 알았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면 이제는 익숙한 것들을 지키면서 살아가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반대인 것 같다.

살다 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이유로 익숙한 것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생긴다.
계획했던 길이 막히기도 하고, 오랫동안 하던 일을 바꿔야 하기도 하고, 한동안 멀리했던 것을 다시 꺼내야 할 때도 있다.
그때마다 다시 조금 서툰 사람이 된다.

예전에는 그것이 뒤로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꼭 그렇게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같은 자리에서 다시 출발한다고 해도 예전과 같은 사람이 출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한 번 넘어져본 사람이고, 생각했던 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고,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일상에 익숙해질 수 있다는 것을 조금은 경험한 사람이다.

그래서 요즘은 다시 시작하는 모습을 너무 근사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단한 결심이 없어도 된다.
완벽한 계획이 없어도 되고, 모든 준비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오늘 할 수 있는 만큼 해보고, 잘되지 않으면 내일 조금 다시 해보면 된다.

어쩌면 그렇게 별것 아닌 하루들이 쌓이고 나서야 어느 날 알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 내가 다시 시작하고 있었구나.
거창한 출발점도 없었고, 특별한 음악이 흐르지도 않았고, 누군가 박수를 쳐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조용히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또 같은 자리에 앉았을 뿐이었다.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크게 선언하는 일이 아니라, 다음 날 또 한 번 해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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