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솔 40 리뷰: 40도인데 믿기 어려울 만큼 부드러운 한국 전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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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술이라고 하면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거의 정해져 있었다.

막걸리.
그리고 초록병 소주.
물론 가끔 산사춘을 마시기도 했고, 복분자주를 집어 들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한국 술을 싫어했던 것은 아니다.
그냥 내가 알고 있던 한국 술의 세계가 딱 그 정도였던 것 같다.

막걸리는 막걸리고, 소주는 소주고, 조금 특별한 날에는 산사춘이나 복분자 정도.
그래서 한동안은 한국 술이 이렇게 다양한 맛과 향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별로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 생각을 처음으로 꽤 크게 바꿔놓은 술이 하나 있다.

담솔 40.

지금 생각해보면 이 녀석을 만난 것이 내가 한국 술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한 첫 번째 계기였던 것 같다.

병이 예뻐서 집어온 술

처음부터 담솔이라는 이름을 알고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평소처럼 리쿼샵에 들렀다가 선반을 둘러보던 중 이상하게 눈에 들어오는 병 하나가 있었다.

짙은 색의 병.
뭔가 창호지 같은 느낌의 갈색 라벨.
그리고 가운데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붓글씨.
뭔가 화려하게 꾸며놓은 병은 아닌데 묘하게 분위기가 있었다.

‘병이 이쁘네. 한 병만 갖고 가보자.’

정말 그게 전부였다.
담솔이 어떤 술인지도 몰랐고, 무엇으로 만드는지도 몰랐고, 몇 도인지도 제대로 보지 않았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병을 열었다.
당시 내 머릿속에는 아주 단순한 계산법이 하나 있었던 모양이다.

‘증류소주라고? 그럼 뭐…… 대충 25도쯤 하겠지.’

문제는 라벨에 아주 친절하게 적혀 있던 40이라는 숫자를 내가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글렌캐런 잔에 조금 따라 코에 가져갔다.
꽤 오래전이라 당시의 향을 지금처럼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 가지 느낌은 아직 남아 있다.
아주 살짝, 그리고 아주 잠깐 솔잎 같은 향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다고 ‘솔의 눈’을 마실 때처럼 차갑고 쨍한 소나무 향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조금 더 따뜻했다.
부드럽고 포근한 쪽에 가까운 솔향이었다.

‘아, 솔잎 향이 나서 담솔인가?’

담솔이라는 술에 대한 정보가 정말 하나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나는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왜 이렇게 부드럽지?

향보다 더 놀라웠던 건 첫 모금이었다.

독한 술을 입에 넣었을 때 자연스럽게 예상하게 되는 날카로운 알코올의 느낌이 생각보다 훨씬 적었다.
목을 긁지도 않았고, 입안을 뜨겁게 밀어붙이지도 않았다.
그냥 조용히 들어왔다.

그리고 달았다.
설탕물처럼 노골적으로 달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향긋한 단맛이 술의 질감에 섞여 있는 느낌이었다.

한 모금.
또 한 모금.

‘오…… 괜찮은데?’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홀짝홀짝 마셨다.

그리고 꽤 빠르게 병이 비었다.
그 뒤에 벌어진 일은 아주 단순했다.

‘어라? 나 왜 이렇게 취하지?’

그리고 소파에서 골아떨어졌다.
ㅋㅋㅋㅋㅋㅋㅋ

나중에야 병을 제대로 보고 알았다.
40도.
25도도 아니고 30도도 아니었다.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됐다.
술이 약했던 게 아니라 술이 독한 티를 너무 안 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담솔과의 첫 만남부터 이 술의 성격을 아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던 셈이다.

강한데 강한 척을 안 한다.

참고로 이 글에 올린 사진 속 병은 그때의 첫 번째 병이 아니다.
몇 병을 더 마셨고, 또 마셨고, 그렇게 따져보니 사진 속 이 녀석이 벌써 여덟 번째로 비운 담솔이다.
한 번의 호기심으로 끝났다고 하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술익는 집’을 보고 다시 생각난 담솔

처음 담솔을 마셨을 때만 해도 나는 이 술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저 솔향이 조금 나고, 40도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부드러운 한국 술.
내게는 딱 그 정도였다.

그러다 나중에 유튜브 ‘술익는 집’에서 담솔을 다루는 내용을 보게 됐다.
화면을 보다가 갑자기 반가운 병이 등장했다.

‘어? 저거 내가 마시던 건데?’

그때부터 조금 궁금해졌다.
그래서 담솔과 솔송주에 대해서 이래저래 찾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마셨던 담솔은 그냥 솔향을 넣은 독특한 소주 정도로 끝나는 술이 아니었다.
담솔의 바탕에는 솔송주라는 술이 있다.
그리고 그 솔송주를 증류한 뒤 장기간 저온에서 숙성하는 과정을 거친다.
내가 처음 마시면서 가장 신기하게 느꼈던 바로 그 부드러움이 그냥 우연히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특히 2년간의 저온 숙성이라는 이야기를 알고 나니 처음 이 술을 마셨을 때의 느낌이 조금 다르게 이해됐다.

40도인데도 알코올이 앞장서서 달려들지 않았던 이유.
입에 넣었을 때 술 전체가 한 번 가라앉아 있다는 느낌.
그제야 조금 연결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니 다시 마셔보고 싶어졌다.
잔을 꺼내고, 조금 따르고, 이번에는 처음보다 천천히 향을 맡고 한 모금을 마셨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캬~ 이 녀석, 물건이었네.’

꿀과 생크림을 바른 와플파이

담솔의 맛을 한두 개의 단어로 설명하기는 조금 어렵다.

솔향이 난다고 해서 솔향이 모든 것을 끌고 가는 술도 아니다.
달다고 해서 달콤함만 강하게 남는 술도 아니다.

내가 이 술에서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오히려 질감과 분위기다.
부드럽다.
그리고 차분하다.

40도라는 숫자가 있는데도 입안에서 괜히 힘자랑을 하지 않는다.
알코올이 혀를 찌르고 목을 화끈하게 긁어내려가는 느낌도 많지 않다.
그 대신 은근한 향과 단맛이 천천히 퍼진다.

이걸 음식으로 표현하라면 내 머릿속에는 이상하게 한 가지 그림이 떠오른다.
따뜻한 와플파이에 꿀을 살짝 뿌리고, 그 위에 부드러운 생크림을 얹은 다음, 혀끝을 살짝 가져다 댔을 때의 느낌.
달콤한데 들이치지 않는다.
크리미한데 무겁지도 않다.
그리고 그 뒤 어딘가에서 아주 은은하게 소나무의 향이 지나간다.

나에게 담솔의 솔향은 앞에서 소리치는 향이 아니다.
잔을 코에 가져가자마자 나 소나무야라며 튀어나오는 향이 아니라, 다른 향들 사이에 숨어 있다가 한 번씩 슬쩍 모습을 보여주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오히려 좋다.
처음부터 끝까지 솔향만 강했다면 몇 잔 마시고 나서는 조금 피곤했을지도 모른다.

담솔에서는 그 향이 술 전체를 지배하기보다 자기 자리를 알고 있는 느낌이다.

문제는 40도라는 숫자를 자꾸 잊게 만든다는 것

담솔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 부드러움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그 장점이 동시에 이 술의 가장 위험한 부분이기도 하다.

너무 쉽게 넘어간다.
40도짜리 술을 마시고 있다는 긴장감이 생각보다 빨리 사라진다.

나만 그렇게 느꼈던 것도 아니다.
여담이지만 언젠가 우솔이 녀석에게 담솔을 블라인드로 마셔보게 한 적이 있다.
술에 대한 정보도, 이름도, 도수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냥 마셔보라고 한 뒤 물었다.

“이거 몇 도 정도 할 것 같노?”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20도? 25도 정도 할 것 같은데요?”

역시 나만 바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ㅋㅋㅋㅋㅋ

40도라고 알려주자 조금 놀라는 표정을 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만큼 담솔은 숫자와 실제로 마셨을 때의 인상이 꽤 다르다.
물론 40도는 40도다.
부드럽다고 해서 알코올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 첫 번째 담솔처럼 한 병을 만만하게 보고 홀짝홀짝 비우다 보면, 조금 뒤 몸이 아주 정직하게 40도짜리 술을 마셨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래서 지금은 적어도 첫날처럼 마시지는 않는다.
담솔에게는 이미 한 번 제대로 교육을 받았으니까.

담솔, 맑은 소나무

처음에는 이름도 몰랐다.
그저 솔잎 향이 나는 술이라서 담솔인가 보다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담솔은 ‘맑은 소나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 의미를 알고 다시 병을 보면 꽤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나무라고 해서 투박하고 거칠지 않고, 40도라고 해서 공격적이지도 않다.
맑고 차분하게 내려앉아 있는데 그 안에는 분명 힘이 있다.

나는 오히려 그래서 이 술이 기억에 남는다.
독한 술이 부드러워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담솔은 단순히 알코올 자극을 숨기는 데서 끝나는 느낌이 아니다.
솔향과 은근한 단맛, 부드러운 질감이 서로 붙어 있으면서 하나의 분위기를 만든다.

그래서 그냥 ‘한국식 보드카’나 ‘솔향 나는 소주’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아쉽다.
담솔에는 이 술만의 얼굴이 있다.

그리고 솔송주가 궁금해졌다

담솔을 알고 나서 솔송주를 마셔보고 싶어졌다.

예전의 나라면 아마 이름만 보고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한국 술이라고 하면 늘 내가 알고 있던 몇 가지 안에서만 고르곤 했으니까.

그런데 담솔을 여러 병 비우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내가 모르는 한국 술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거 아닌가?’

당연한 이야기인데 당시에는 그걸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지역마다 술이 있고, 집안마다 이어져온 방식이 있고, 같은 쌀로 시작해도 발효와 증류, 숙성에 따라 전혀 다른 술이 만들어진다.
담솔은 내게 그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처음 체감하게 만들어준 술이었다.

그래서 언젠가 한국에 가면 솔송주는 꼭 제대로 한 번 마셔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담솔의 출발점이 되는 술을 직접 마셔보면 내가 담솔에서 느꼈던 솔의 향과 은근한 단맛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조금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아마 그때 담솔도 한 잔 옆에 같이 따라놓게 될 것 같다.
둘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는 것도 꽤 재미있을 것 같다.

여덟 병을 비우고도 다시 찾게 되는 이유

술을 한 번 마셔보고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몇 년에 걸쳐 같은 술을 계속 다시 사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
병이 예뻐서 집어 들었다.
두 번째부터는 맛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담솔이라는 술 자체가 익숙해졌다.

위스키처럼 잔을 들고 복잡한 향을 하나씩 찾아야 하는 술도 아니고, 무언가 특별한 음식을 준비해야만 마실 수 있는 술도 아니다.
그냥 생각날 때 조금 따라놓고 천천히 마시면 된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평범하지 않다.
은은한 솔향이 있고, 꿀처럼 부드러운 달콤함이 있고, 무엇보다 40도라는 숫자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편안하게 넘어간다.

아마도 지금까지 여덟 병이나 비운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여덟 병째인데도 이 술을 마실 때면 가끔 첫 번째 병이 생각난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리쿼샵에서 병 하나만 보고 집어 들었던 날.
40이라는 숫자도 제대로 안 보고,

‘뭐, 25도쯤 하겠지.’

하면서 글렌캐런 잔에 따라 마셨던 밤.

조금 지나

‘어라? 나 왜 이렇게 취하지?’

하고 소파에서 뻗어버렸던 나.

지금 같으면 병을 집어 들자마자 도수부터 확인하고, 어떤 술인지 찾아보고, 이것저것 읽어본 뒤 마셨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히려 아무 정보 없이 만났기 때문에 더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은 것 같다.

그리고 그 우연한 한 병 덕분에 나는 막걸리와 초록병 소주 바깥에 있던 한국 술의 세계를 조금씩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담솔은 내게 단순히 맛있는 술 한 병만은 아니다.

한국 술도 이렇게 향긋하고, 이렇게 부드럽고, 이렇게 자기만의 개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려준 술.

그래서 앞으로도 아마 한 병씩 계속 사게 될 것 같다.

단, 이제는 절대로 25도라고 착각하지 않는다.
그 부분만큼은 몸으로 아주 확실하게 배웠다.

담솔 40.

이 녀석을 한마디로 정리하라면 별로 어렵지 않다.
그냥 진짜 부드러우면서 강한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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