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유통기한 지나면 써도 될까?: 변질 확인과 올바른 보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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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를 몇 병씩 가지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향수가 하나쯤 생긴다.
처음에는 정말 자주 뿌렸는데 다른 향수를 사면서 점점 손이 가지 않게 된 향수.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뒀다가 몇 년 만에 다시 발견한 향수.
혹은 단종된 제품이라 아까워서 조금씩만 사용하다 보니 어느새 구입한 지 5년, 7년이 지나버린 향수.

그러면 병을 들고 한 번쯤 고민하게 된다.

‘이거 아직 써도 되는 건가?’

향수 유통기한을 검색해보면 흔히 3년, 혹은 3~5년 정도라는 이야기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면 5년이 지난 향수는 무조건 버려야 하는 걸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렇지는 않다.

향수는 어느 날짜를 넘는 순간 갑자기 사용할 수 없게 되는 물건은 아니다.
오히려 실제로 중요한 것은 몇 년이 지났느냐보다 어떤 상태로 보관되었고, 지금 향수의 냄새와 색, 상태가 어떻게 변했느냐에 가깝다.
미국 FDA 역시 일반 화장품에 일률적인 유통기한 표시를 요구하지 않으며, 화장품의 실제 shelf life는 제품 종류와 사용 방법, 보관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향수 역시 미국에서는 화장품의 범주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오래된 향수는 무엇을 보고 판단해야 할까?

향수에도 정말 유통기한이 있을까?

향수도 시간이 지나면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우유나 생선처럼 특정 날짜를 넘는 순간 상하기 시작한다고 생각하면 조금 다르다.
향수는 일반적으로 알코올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손가락을 직접 넣어 사용하는 크림이나 로션과는 제품의 형태와 사용 방식 자체가 다르다.
그래서 잘 보관된 향수는 생각보다 오랫동안 원래 향을 유지하는 경우가 있다.

Diptyque 역시 향수는 빛과 온도 변화를 피해 보관한다면 여러 해 동안 보존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CHANEL도 열과 빛, 공기를 향수의 대표적인 적으로 설명하면서 적절하게 보관하면 향수의 품질을 여러 해 동안 유지할 수 있다고 안내한다.

따라서 인터넷에서 흔히 말하는

“향수는 개봉 후 3년이면 끝이다.”

라는 문장을 모든 향수에 적용되는 절대적인 규칙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물론 제품에 사용기한이나 개봉 후 사용기간이 별도로 표시되어 있다면 제조사의 안내를 우선해서 보는 것이 좋다.
하지만 그런 표시가 없다고 해서 구입일로부터 정확히 몇 년을 계산한 뒤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향수에서 가장 먼저 변하는 것은 향일 수 있다

향수에는 여러 종류의 향료 성분이 들어 있다.

향수를 사용하고 보관하는 동안 향료 성분은 조금씩 공기와 접촉하고, 보관 환경에 따라 빛과 열에도 노출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일부 향료 성분은 산화되거나 분해되면서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 다른 향을 만들 수 있다.

여기서 기존에 썼던 향수는 왜 시간이 지나면 향이 달라질까: 탑노트·미들노트·베이스노트 쉽게 이해하기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 글에서 이야기한 것은 향수를 피부에 뿌린 뒤 몇 시간 동안 탑노트가 사라지고 미들노트와 베이스노트가 나타나는 정상적인 향의 전개다.

이번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몇 년 동안 병 속에 보관된 향수 자체의 구성이 조금씩 달라지면서, 예전과 다른 향이 나는 경우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뿌리자마자 밝고 상큼한 느낌이 선명했던 향수인데 오래된 뒤 다시 사용해보니 첫 향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처음부터 무겁고 둔한 향만 올라올 수 있다.
또는 기억하던 향과 비교해 유난히 거칠거나 날카롭게 느껴지고, 이전에는 없었던 시큼하거나 불쾌한 냄새가 섞여 있을 수도 있다.

이런 변화가 분명하다면 단순히 내가 오랜만에 맡아서 낯설게 느끼는 것인지, 실제 향수가 변한 것인지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색이 진해졌다고 무조건 변질된 것은 아니다

오래된 향수를 보면 액체 색상이 조금 진해진 경우도 있다.
투명에 가까웠던 향수가 약간 노란색이나 호박색으로 변해 있으면 가장 먼저 이런 생각이 든다.

‘상한 건가?’

하지만 색 변화 하나만으로 향수가 못 쓰게 되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Diptyque도 향수는 시간이 지나면서 약간의 색 변화가 나타날 수 있지만, 색이 변했다는 이유만으로 향의 품질까지 나빠졌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향료나 천연 원료 가운데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색이 조금씩 변할 수 있는 성분도 있다.
따라서 색이 조금 진해졌지만 냄새는 예전과 거의 같고, 액체 상태도 정상이라면 색 변화만 보고 바로 버릴 필요는 없다.

반대로 원래 맑았던 향수가 갑자기 심하게 탁해졌거나, 이전에는 없던 침전물이 눈에 띄고, 동시에 냄새까지 크게 변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때는 단순한 색 변화보다 여러 변화가 동시에 나타나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오래된 향수는 이렇게 확인해보면 된다

몇 년 된 향수를 발견했다고 바로 피부에 여러 번 뿌릴 필요는 없다.

먼저 향수병 자체를 살펴본다.

액체 색상이 예전과 지나치게 달라졌는지.
원래 없었던 탁함이나 침전이 생겼는지.
병 입구나 스프레이 부분에 손상이나 누수 흔적이 있는지도 확인해본다.

그다음에는 시향지에 한 번 뿌려보는 것이 좋다.
시향지가 없다면 냄새가 강하지 않은 깨끗한 종이를 대신 사용할 수도 있다.
처음 분사했을 때의 향만 확인하지 말고 10분, 30분 정도 지나면서 향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맡아본다.

처음 알코올 냄새가 강하다고 해서 바로 변질이라고 판단할 필요도 없다.
향수는 뿌리는 순간 알코올이 빠르게 증발하면서 처음 몇 초 동안 알코올 향이 도드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시간이 지나도 원래 향은 거의 나타나지 않고 불쾌하거나 낯선 냄새만 계속 남는다면 사용을 다시 생각해볼 만하다.

향이 약해졌다고 꼭 오래되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오래된 향수를 다시 뿌렸는데 예전보다 향이 약하게 느껴지면 자연스럽게 유통기한을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도 바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같은 향수를 계속 맡으면 후각이 그 냄새에 적응하면서 실제보다 향이 약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이전 글인 내 향수 냄새가 나만 안 느껴지는 이유: 후각 적응과 노즈 블라인드에서 따로 이야기했다.

또 계절과 온도, 피부 상태가 달라져 향이 예전과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
같은 향수가 여름과 겨울에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 역시 같은 향수가 계절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 여름과 겨울 향수 차이에서 다뤘다.

그래서 오래된 향수의 상태를 확인할 때는

“예전보다 향이 약하다.”

하나만 보기보다,

향의 구성 자체가 달라졌는지.
예전에 없던 불쾌한 냄새가 생겼는지.
색이나 액체 상태가 함께 변했는지.

이런 것들을 같이 보는 편이 낫다.

냄새가 괜찮으면 오래된 향수도 계속 사용해도 될까?

보관 상태가 좋았고 색이나 액체 상태에 특별한 문제가 없으며 향도 기억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단순히 구입한 지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반드시 버려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피부에 직접 사용하는 제품인 만큼 한 가지는 조금 더 조심할 필요가 있다.

향료에 사용되는 일부 성분은 공기와 접촉하면서 산화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향료에 많이 쓰이는 limonene과 linalool도 산화되면 새로운 산화 생성물이 만들어질 수 있고, 이들 가운데 일부는 알레르기성 접촉피부염과 관련될 수 있다는 연구들이 있다.

그렇다고 오래된 향수는 모두 위험하다는 뜻은 아니다.
향수의 나이만으로 피부 반응 여부를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예전과 냄새가 크게 달라진 향수를 굳이 피부에 계속 사용할 이유는 없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좋다.

특히 뿌린 부위가 반복해서 붉어지거나 가렵거나 따갑다면 사용을 중단하는 편이 좋다.
향료에 의한 피부 자극과 접촉피부염에 대해서는 향수는 어디에 뿌려야 오래갈까?: 손목·목·옷에 뿌렸을 때 차이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다.

향수 보관에서 가장 피해야 할 것은 빛과 열이다

향수를 오래 보관하고 싶다면 무엇보다 환경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Diptyque는 직사광선과 온도 변화를 피하고 서늘하고 건조한 장소에 향수를 보관할 것을 권한다.
CHANEL 역시 열과 빛을 피하고 병을 단단히 닫아두는 것을 권장하며, 밝은 환경이라면 원래의 상자에 보관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향수병이 예쁘다고 창가에 진열해두는 것은 보기에는 좋지만 장기 보관에는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닐 수 있다.
햇빛이 직접 들어오는 창가, 난방기 근처, 여름철 자동차 내부처럼 온도가 자주 크게 변하는 장소는 피하는 편이 좋다.
FDA 역시 화장품은 열과 햇빛, 공기 노출, 온도 변화에 의해 색이나 질감, 냄새가 변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향수도 결국 예쁜 병을 어디에 전시할 것인가보다 얼마나 안정적인 환경에 두느냐가 더 중요하다.

욕실에 향수를 두는 것은 생각보다 좋은 방법이 아니다

향수를 아침에 사용하기 편해서 욕실에 두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장기간 보관 장소로는 조금 아쉽다.
샤워를 할 때마다 욕실의 온도가 크게 변하고, 뜨거운 수증기가 반복해서 발생하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향수 자체가 바로 물을 흡수해 상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굳이 반복적인 온도 변화가 있는 환경에 둘 이유도 없다.

화장대 서랍이나 옷장 안처럼 햇빛이 직접 닿지 않고 온도가 비교적 일정한 장소가 더 편하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된다.
어둡고, 서늘하고, 온도가 자주 바뀌지 않는 곳.
이 세 가지 조건이면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충분하다.

향수는 냉장고에 넣어야 더 오래갈까?

빛과 열이 좋지 않다고 하면 반대로 아주 차갑게 보관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향수를 굳이 냉장고에 보관해야 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최대한 차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다.
향수 브랜드들도 냉장 보관보다는 직사광선을 피한 서늘하고 건조한 장소를 권장한다.

평범한 실내에서 서랍이나 닫힌 수납장처럼 온도 변화가 적은 곳을 확보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경우가 많다.
오히려 향수를 냉장고에 넣었다 꺼냈다 반복하면서 큰 온도 변화를 만드는 것보다 안정적인 실내 환경에 그대로 보관하는 편이 관리하기 쉽다.

사용한 뒤에는 병을 제대로 닫아두는 것도 중요하다

스프레이형 향수는 일반적으로 병을 열어 직접 액체를 사용하는 제품보다 외부 공기와의 접촉이 적다.
그래도 공기 노출을 완전히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프레이형 향수라면 노즐과 병이 손상되지 않도록 보관하고, 병 입구가 직접 열리는 형태라면 사용 후 제대로 닫아두는 것이 좋다.

특히 향수를 작은 공병에 자주 옮겨 담는다면 원래 병보다 공기와 접촉할 기회가 많아질 수 있다.
휴대용으로 사용할 만큼만 소량 덜어두고, 본품은 안정적인 장소에 보관하는 편이 관리하기 쉽다.

향수를 오래 보관한다는 이유로 병을 자주 열어 냄새를 확인하는 것도 굳이 할 필요는 없다.

좋은 보관법은 특별한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빛과 열과 불필요한 공기 노출을 줄이고 그냥 가만히 두는 것에 가깝다.

결국 날짜보다 향수 자체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오래된 향수를 발견하면 우리는 먼저 숫자부터 계산한다.
3년, 5년, 10년.
하지만 향수를 사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그 숫자 하나만으로 나누기는 어렵다.

5년 된 향수라도 어둡고 서늘한 곳에서 안정적으로 보관했다면 원래 모습을 꽤 잘 유지하고 있을 수 있다.
반대로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더라도 한여름 자동차 안이나 햇빛이 강한 창가에 오랫동안 놓여 있었다면 더 빨리 변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오래된 향수를 다시 꺼냈을 때 내가 확인하는 기준은 날짜보다 단순하다.

냄새가 달라졌는가.
색과 액체 상태가 크게 변했는가.
보관 환경에 문제가 있었는가.
피부에 사용했을 때 이상 반응이 생기는가.

별다른 변화가 없다면 단지 몇 년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하던 향수를 바로 버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예전에 좋아했던 향이 사라지고 전혀 다른 냄새만 남았다면, 그 병을 계속 붙잡고 있을 이유도 없다.
향수는 오래 보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결국 좋은 향을 즐기기 위해 가지고 있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향수를 오래 즐기고 싶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창가나 뜨거운 곳을 피하고, 사용한 뒤 잘 닫아 어둡고 온도가 안정적인 곳에 보관하는 것.

향수에게 필요한 것은 특별한 보존 기술보다, 변하지 않는 조용한 자리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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