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omic Coffee Roasters Space Cadet 리뷰: 살짝 떠 있다가 그을린 설탕에 붙들리는 한 잔

작성자

카테고리:

,

커피 이름은 가끔 맛보다 먼저 기분을 결정한다.
봉투에 적힌 한두 단어가 첫 모금을 마시기도 전에 온도와 무게를 미리 그려버리는 순간들이 있다.
Atomic Coffee Roasters의 ‘Space Cadet’을 처음 마주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주복을 입은 조그만 인물이 줄 하나에 매달린 채 둥둥 떠 있는 그림과, 이제 막 훈련을 시작한 신입을 뜻하는 이름 사이에서, 나는 이 커피가 발을 무겁게 땅에 붙이는 쪽은 아닐 거라고 지레 짐작해버렸다.

원자와 궤도를 로고로 삼은 지 벌써 30년, Atomic Coffee Roasters는 이번에도 에티오피아와 온두라스, 니카라과를 한 봉투 안에 궤도처럼 묶어놓았다.
카투라와 티피카 사이 어딘가에 에티오피아 헤어룸 한 줌이 섞여 있다는 사실만으로, 세 나라를 거쳐온 여정이 손에 잡힐 듯했다.
로스팅 막대는 medium을 살짝 넘긴 자리에서 멈춰 있었는데, 마치 이 커피가 어디까지 무거워질지 스스로 정해두고 온 것 같았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지점에서 시작하겠다는 선언처럼.

뜨겁게 내렸을 때 첫 모금은 클레멘타인으로 열린다.
다만 그 신맛은 확 튀어 오르는 대신, 이미 한 김 식어 미리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잔 속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향이 먼저 코끝에 닿고 나서야 맛이 뒤늦게 따라붙었는데, 이건 산미라기보다 산미가 남기고 간 잔상에 더 가까웠다.

그 뒤로 누가가 밀려온다.
견과류를 꿀이나 설탕에 굳혀 만든 그 쫀득한 단맛이, 클레멘타인이 만들어놓은 가벼운 자리를 조용히 파고든다.
씹는 질감이 없는 액체인데도 무언가를 오물거리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든든했고, 앞서 온 산미를 밀어내는 대신 그 위에 지그시 몸을 포갰다.

마지막에 남는 건 살짝 그을린 설탕이다.
캐러멜보다 한 단계 더 태운, 가장자리가 까맣게 눌어붙기 직전의 그 냄새.
이 지점에서 커피는 처음의 가벼움을 싹 배신하고 묵직하게 자리를 잡는데, 신기하게도 그 무게가 답답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앞의 두 단계가 공중에 떠 있던 것을 이 마지막 단계가 툭 끌어내리는 것처럼 느껴졌달까.

봉투는 콜드브루와 잘 어울린다고 귀띔했고, 얼음을 채우자 그 말대로 세 가지 풍미가 자리를 바꿔 앉았다.
얼음이 클레멘타인은 한 뼘 더 또렷하게 밀어 올리고, 누가는 슬며시 뒷걸음질 치게 만들었다.
그을린 설탕만이 끝까지 살아남아 잔 밑바닥에 가라앉듯 남았고, 그 한 톨이 뜨거울 때보다 더 오래 혀에 들러붙어 있었다.

라벨의 우주비행사 그림을 다시 들여다보면, 그 인물은 마냥 자유롭게 떠 있는 게 아니라 어딘가에 줄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이 커피도 비슷하다. 클레멘타인과 누가가 만드는 앞부분은 분명 가볍게 부풀어 오르는데, 그을린 설탕이 그 줄 역할을 하면서 커피 전체가 아예 붕 떠버리지 않게 붙잡아준다.
훈련 중인 신입 우주비행사라는 이름이, 아직 지구의 중력을 다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뜻으로도 읽혔다.

9월 초, 아직 낮에는 덥고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해지는 이 애매한 계절에 이 커피를 만난 것도 나쁘지 않은 타이밍이었다.
여름 내내 마시던 차가운 커피에서 아직 발을 떼기는 이르고, 그렇다고 진하고 무거운 가을 커피로 넘어가기도 이른 시기에, Space Cadet은 그 틈새에 걸터앉은 커피였다.

결국 이 커피의 이름은 정확했다.
완전히 뜨는 것도, 완전히 가라앉는 것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에서 흔들리는 상태.
다음에 다시 이 봉투를 만난다면, 오후의 애매한 시간, 얼음 잔이었다는 그 기억 하나만으로 손이 먼저 갈 것 같다.

새 글 알림 받기

관심 있는 주제를 선택하면 새 글이 올라올 때 이메일로 알려드립니다.

받고 싶은 주제를 선택해 주세요.

코멘트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