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피를 기억하는 방법은 참 제각각이다.
어떤 커피는 처음 맡았던 향이 기억나고, 어떤 커피는 유난히 강했던 산미가 생각난다.
어떤 원두는 어디에서 마셨는지, 그날 날씨가 어땠는지까지 묘하게 함께 남기도 한다.
그런데 Sightglass의 Crown Point를 생각하면 나는 맛보다 먼저 이상한 촉감 하나가 떠오른다.
혀 위에 무언가 부드러운 것이 한 겹 깔리는 느낌.
우유를 넣지도 않은 에스프레소인데, 처음 이 커피를 마셨을 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진한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마셨는데도 날카롭거나 거칠게 지나가지 않는다.
입안을 충분히 채울 만큼 묵직한데, 그 무게가 이상할 정도로 부드럽다.
그래서인지 커피를 마신다기보다 따뜻한 무언가가 혀 위에 천천히 녹아내리는 느낌에 더 가까웠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밀크초콜릿 같은 맛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초콜릿을 떠올리게 하는 달콤함이 있다.
하지만 다크초콜릿처럼 쌉싸름하거나 건조한 느낌보다는 우유가 많이 들어간 초콜릿처럼 둥글고 포근하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는 버터스카치 같기도 하고, 바닐라 같기도 한 단맛이 따라온다.
그렇다고 정말 달달한 커피는 아니다.
설탕을 넣은 것도 아니고 시럽이 들어간 것도 아닌데, 마시고 있으면 자꾸 달콤하다는 생각이 든다.
맛 자체가 달다기보다는 커피가 주는 분위기가 달콤하다고 해야 할까.
Crown Point라는 이름 아래 적혀 있는 Raspberry, Chocolate, Butterscotch라는 세 단어를 보고 있으면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커피를 마실 때는 그 세 가지를 하나씩 찾아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맛에 하나씩 이름을 붙이기 시작하면 오히려 처음 느꼈던 그 부드러움을 놓치는 기분이 들었다.
그냥 생각 없이 한 모금 마시고 있는 쪽이 더 좋았다.
그리고 이 커피는 라떼로 만들었을 때 더 재미있어졌다.
보통 좋아하는 에스프레소를 우유에 섞을 때는 약간 아쉬울 때가 있다.
스트레이트로 마실 때 분명히 있던 무언가가 우유 속으로 숨어버리는 느낌.
향이 희미해지기도 하고, 원두가 가지고 있던 성격이 갑자기 얌전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원두는 라떼로 만들고 나면 괜히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Crown Point는 반대였다.
우유를 넣으니 무언가를 잃는 것이 아니라, 원래 가지고 있던 성격이 더 커졌다.
에스프레소만 마셨을 때 혀 위에 얇게 깔리던 그 milky한 느낌 위로 실제 우유가 포개진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커피와 우유의 경계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 건지, 따뜻한 우유가 섞인 초콜릿을 마시는 건지 잠깐 헷갈릴 만큼 부드러워진다.
그리고 나는 그때 아주 이상한 이미지를 떠올렸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솜구름 속에서 뒹굴고 있는 느낌.
지금 글로 적어놓고 보니 조금 유치한 표현 같기도 하다.
맛있는 라떼라는 표현만으로는 조금 부족했다.
그때 내가 좋아했던 것은 초콜릿이나 버터스카치라는 특정한 맛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 한 잔이 입안에 만들어주는 온도와 촉감이었다.
이런 커피는 설명하려고 할수록 오히려 조금 멀어지는 것 같다.
어느 맛이 좋았는지 정확히 말하지 못해도, 이상하게 다시 마시고 싶은 커피가 있다.
Crown Point가 그랬다.
에스프레소로 마시면 충분히 진하다.
바디도 가볍지 않고, 존재감도 확실하다.
그런데 그 진함이 공격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따뜻하고 둥글다.
그래서 아침에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드는 에스프레소라기보다는, 조금 천천히 앉아서 마시고 싶은 커피에 가까웠다.
그런 성격 때문인지 Crown Point의 라떼에는 유난히 서늘한 날의 오후가 잘 어울린다.
특별히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없는 오후, 잔을 두 손으로 잡고 천천히 마시고 싶은 느낌.
밖은 조금 차가워도 상관없을 것 같다.
잔 안에는 이미 충분히 따뜻한 것이 있으니까.
커피 한 잔이 항상 새로운 향과 복잡한 맛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굳이 분석하지 않고, 그냥 마시는 동안 기분이 좋아지는 커피도 필요하다.
어떤 커피는 향으로 기억되고, 어떤 커피는 맛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어떤 커피는 이상하게도 촉감으로 기억된다.
Sightglass Crown Point는 나에게 그런 커피였다.
에스프레소에서는 혀 위에 부드러운 한 겹을 남기고, 라떼에서는 그 한 겹이 조금씩 부풀어 올라 마지막에는 따뜻한 솜구름 같은 기억으로 남는다.
그래서 다시 Crown Point를 만나게 된다면 아마 처음에는 에스프레소로 한 잔을 마실 것 같다.
그리고 그다음 잔은 망설이지 않고 라떼로 만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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