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스키를 잘 안다고 말하기엔 아직도 모르는 게 많다.
처음 위스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내가 아는 버번은 거의 세 가지 정도였다.
Maker’s Mark, Wild Turkey, Buffalo Trace. 딱 이 정도였다.
그때는 잭다니엘이 버번이냐 아니냐 같은 이야기도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갈색 술은 다 비슷한 줄 알았고, 버번이라는 장르 안에서도 이렇게 많은 차이가 있다는 걸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런 위린이 시절, 내 위스키 싸부 유민이가 소개해준 첫 버번 위스키가 있었다.
바로 Legent 였다.
처음에는 병 디자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버번치고는 어딘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전형적인 미국 버번의 투박함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화려하게 꾸민 병도 아니었다.
검은 붓터치 같은 라벨 디자인이 묘하게 동양적인 인상을 줬고, 이름도 짧고 강했다.
LEGENT.
처음 봤을 때부터 “이건 뭔가 조금 다르네” 싶은 느낌이 있었다.
American + Japanese
Legent 의 매력은 단순히 “미국 버번”이라는 말로 끝나지 않는다.
내가 이 병을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이 위스키가 가진 방향성 때문이다.
미국 켄터키 버번의 역사와 일본식 블렌딩 감각이 만난 느낌.
사실상 200년이 넘은 켄터키의 역사와 거의 100년에 가까 일본 장인정신이 만난 결과물이 아닌가?
물론 한 잔 마신다고 해서 그 긴 역사와 장인정신을 전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셔보면 확실히 일반적인 입문용 버번과는 다른 결이 있다.
익숙한 버번의 바닐라, 오크, 카라멜 같은 느낌이 있으면서도, 그 위에 조금 더 정돈된 단맛과 과실감이 얹혀 있는 듯했다.
막 거칠게 밀고 들어오는 버번이라기보다는, 한 번 더 다듬어진 버번에 가까웠다.
화이트 오크, 쉐리 캐스크, 레드와인 캐스크
Legent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캐스크 피니시다.
화이트 오크 배럴에서 1차 숙성을 거친 뒤, 쉐리 캐스크와 레드와인 캐스크에서의 피니시가 더해진다.
이 부분이 내가 느낀 Legent의 인상을 꽤 크게 좌우했다.
첫 느낌은 버번답게 oaky했다.
오크에서 오는 나무 향, 바닐라, 살짝의 스파이스가 먼저 느껴진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고, 뒤쪽으로 갈수록 말린 과일 같은 느낌이 따라온다.
건포도, 말린 체리, 약간의 자두 같은 인상이 있다.
너무 진득하게 달라붙는 단맛은 아니고, 버번 특유의 단단한 골격 위에 과실감이 얇게 코팅된 느낌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이 위스키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오키한 스파이스와 말린 과일의 오묘한 조화.
이게 Legent를 계속 기억하게 만든 지점이었다.
거칠지만 부드럽고, 익숙하지만 낯선 버번
버번이라고 하면 보통 힘 있고, 달고, 바닐라와 오크, 아세톤 냄새가 강한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Legent에도 그런 버번의 기본적인 성격은 있다.
그런데 그 표현 방식이 조금 다르다.
무작정 강하게 밀어붙이는 타입은 아니고, 한 번 더 다듬어진 느낌이 있다.
첫맛에서는 버번다운 달콤함과 오크가 느껴지고, 중간으로 갈수록 스파이스가 살짝 올라온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쉐리와 와인 캐스크에서 온 듯한 말린 과일 느낌이 남는다.
내가 좋아하는 지점은 바로 이 균형이다.
너무 달기만 한 것도 아니고, 너무 거칠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아주 얌전하고 밋밋한 위스키도 아니다.
어딘가 버번다운 힘은 남겨두면서, 마무리는 조금 더 부드럽고 세련되게 정리한 느낌이다.
내 첫 버번 위스키
사실 Legent를 마셨던 기억이 특별한 이유는 맛 때문만은 아니다.
이 병은 내게 단순히 “맛있었던 위스키”가 아니라, 버번 위스키에 대한 관심을 열어준 병이었다.
그전까지 버번은 그냥 미국 위스키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이름 몇 개 알고, 마트나 리커샵에서 본 적 있는 병 몇 개 아는 정도였다.
그런데 Legent를 마시고 나서 버번에 대해 조금씩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버번이 뭔지, 테네시 위스키와는 뭐가 다른지, 왜 어떤 사람들은 잭다니엘을 버번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아니라고 하기도 하는지, 캐스크 피니시가 맛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하나씩 찾아보게 됐다.
그렇게 검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버번도 궁금해졌고, 다른 사람들의 리뷰도 찾아보게 됐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쿠씨형아&누나와의 인연도 생겼다.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다.
술 한 병이 단순히 술 한 병으로 끝나지 않고, 취향을 열어주고, 새로운 관심사를 만들고, 사람과의 인연까지 이어주는 경우가 있다.
내게 Legent는 그런 녀석이었다.
위린이에게도 부담스럽지 않았던 버번
Legent가 좋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입문자에게도 너무 어렵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완전히 가볍고 쉬운 위스키라고만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처음 버번을 접하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거칠거나 공격적으로 느껴지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버번 특유의 달콤함이 있어서 접근성이 있고, 동시에 쉐리와 레드와인 캐스크 피니시에서 오는 과실감이 있어서 조금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처음부터 너무 강한 배럴프루프나 고도수 버번으로 들어갔다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
그런데 Legent는 나에게 버번이라는 장르를 너무 무섭지 않게 열어준 병이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도, 첫 버번 경험으로 꽤 좋은 선택이었다고 느낀다.
이런 사람에게 잘 맞을 것 같다
Legent는 이런 사람에게 잘 맞을 것 같다.
| 취향 | 추천 이유 |
|---|---|
| 버번 입문자 | 너무 거칠지 않고 접근성이 좋다 |
| Maker’s Mark, Buffalo Trace를 마셔본 사람 |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좋다 |
| 와인 캐스크, 쉐리 캐스크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 | 말린 과일과 부드러운 피니시가 매력적이다 |
| 일반적인 버번과 조금 다른 느낌을 찾는 사람 | 미국 버번에 일본식 블렌딩 감각이 더해진 인상이 있다 |
| 감성 있는 병 디자인을 좋아하는 사람 | 라벨과 병 분위기가 꽤 인상적이다 |
반대로, 아주 강한 오크 폭발감이나 높은 도수의 강렬한 버번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얌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Legent를 처음 만났을 때의 나처럼 버번을 아예 모르거나 버번의 세계에 막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Legent는 꽤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다시 마신다면
지금 다시 마신다면 처음 마셨을 때와는 다르게 느낄지도 모른다.
그때는 위스키를 지금보다 훨씬 덜 알던 시절이었고, 버번에 대한 기준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Legent가 더 특별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첫인상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술은 맛으로 기억되고, 어떤 술은 분위기로 기억된다.
그리고 어떤 술은 사람으로 기억된다.
Legent는 나에게 세 가지가 조금씩 다 남아 있는 병이다.
맛으로는 오크, 스파이스, 말린 과일의 조화가 기억나고, 분위기로는 미국과 일본이 만난 독특한 버번이라는 인상이 남아 있다.
그리고 사람으로는 이 병을 소개해준 유민이, 그리고 버번을 검색하다 이어진 쿠씨형아&누나와의 인연이 떠오른다.
그래서 빈 병을 봐도 그냥 빈 병 같지가 않다.
이 병은 내 위스키 취향의 어느 한 지점에 꽤 선명하게 남아 있다.
Legent는 내게 첫 버번 위스키이자, 버번이라는 장르에 대한 관심을 열어준 병이었다.
화이트 오크에서 오는 버번다운 오키함과 스파이스, 쉐리 캐스크와 레드와인 캐스크 피니시에서 느껴지는 말린 과일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다.
무작정 강한 버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밋밋하지도 않다.
익숙한 버번의 맛 위에 조금 다른 결을 얹은 느낌이다.
처음에는 Maker’s Mark, Wild Turkey, Buffalo Trace 정도만 알고 있던 위린이였지만, Legent 덕분에 버번을 조금 더 찾아보게 됐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술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인연도 생겼다.
그래서 나에게 Legent는 단순한 리뷰 대상이 아니다.
버번을 좋아하게 된 시작점.
위스키 취향의 문을 열어준 병.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이어진 술.
그 정도면 충분히 오래 기억할 만한 한 병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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