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술은 맛보다 이름을 먼저 알게 된다.
발렌타인이 나에게는 그런 쪽이었다.
이 21년 병도 그런 익숙함을 등에 업고 내 손에 들어왔다.
한국에서 지인이 놀러 오면서 한 병 사다 줬고, 블렌디드 위스키는 로얄 살룻 정도를 빼고는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라, 내가 내 돈 주고 샀다면 아마 고르지 않았을 병이었지만, 그렇게 생긴 인연으로 거의 1년에 걸쳐 나눠 마셨다.
아껴야 할 특별한 병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빨리 비워야 할 이유도 없었던 애매한 위치의 술이라, 오히려 그 애매함 덕분에 부담 없이 천천히 곁에 두고 마실 수 있었다.
위스키를 몰라도 이미 알고 있던 이름
위스키 붐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도, 한국 드라마나 영화 속 근사한 술자리 장면, 혹은 누군가의 사무실 협탁 위 장식장 한켠에는 어김없이 저 각진 병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때는 그게 정확히 무슨 맛인지도, 얼마나 오래 묵힌 술인지도 몰랐지만, 병의 실루엣과 흘림체 로고만큼은 이상하리만치 눈에 익어 있었다.
정작 그 술이 어떤 맛인지는 몰라도 이름만큼은 또래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였고, 실제로 마셔본 적은 없어도 이미 “어른들의 술”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돼 있었다.
그러다 보니 위스키를 제대로 알기 시작한 뒤에도, 발렌타인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어쩐지 처음 만나는 술 같지가 않았다.
마치 오래전에 얼굴만 스친 적 있는 사람을 다시 만난 듯한, 낯설지만 동시에 낯설지 않은 기묘한 감각이었다.
나중에 위스키를 하나둘 알아가면서 다른 브랜드 이름은 새로 외워야 했지만, 발렌타인만큼은 이미 저장돼 있던 이름을 다시 꺼내 쓰는 기분이었다.
각진 병과 낡은 문장 하나
병을 손에 쥐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목 부분에 도드라지게 각인된 문장 같은 로고다.
마치 오래된 가문의 인장처럼 병목에 새겨진 그 문양은,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우리는 꽤 오래된 집안입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크림색 라벨 위에는 “ESTD 1827″이라는 문구가 금박으로 박혀 있고, 그 아래로 발렌타인 특유의 흘림체 서명이 이어진다. 21년이라는 숫자에는 녹색 포인트가 들어가 있어서, 같은 라인업 안에서도 이 병만의 자리를 표시해두려는 의도가 읽혔다.
화려하게 꾸미기보다는 전통과 격식을 강조하는 쪽으로 디자인을 밀어붙인 느낌인데, 그 의도가 다소 뻔히 보이는데도 이상하게 밉지가 않았다.
아마도 그 뻔함조차 이 브랜드가 오랫동안 쌓아온 이미지의 일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병을 들었을 때의 묵직한 손맛도 그 이미지에 한몫 거들었는데, 손잡이 부분 없이도 안정적으로 잡히는 병의 균형감이 꽤 마음에 들었다.
지인이 놓고 간 병, 그리고 1년
블렌디드 위스키는 로얄 살룻을 제외하곤 그렇게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이 녀석도 내가 내 돈 주고 샀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한국에서 지인이 놀러 오면서 한 병 사다 준 덕에 인연이 닿았고, 아껴 마신다기보다는 그냥 천천히, 생각날 때마다 한 잔씩 비우다 보니 거의 1년에 걸쳐 이 병을 다 비웠다.
평소 좋아하는 병이라면 아까워서 오히려 잘 안 열게 되고, 반대로 큰 기대 없이 받은 병은 어느새 바닥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 발렌타인도 정확히 그런 쪽이었다.
특별히 기념할 날을 기다리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구석에 처박아두지도 않은 채, 그냥 평범한 저녁의 마무리로 꺼내 마시는 술이 되어주었다.
어떤 날은 퇴근하고 별생각 없이 한 잔, 어떤 날은 누가 놀러 와서 한 잔, 그런 식으로 소비된 병이라 특정한 순간 하나로 기억되기보다는 그 1년이라는 시간 전체가 뭉뚱그려져 남아 있다.
그렇게 오래 곁에 두고 마시다 보면 유독 매번 똑같이 느껴지는 인상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 술에서는 그게 목 넘김의 순서였다.
쓴맛이 접히고 단맛이 고개를 내미는 순간
부드럽게 넘어간 뒤 살짝 고개를 들었다가 이내 사라지는 쓴맛, 그리고 그 뒤를 슬며시 따라 나오는 단맛.
마실 때마다 이 순서만큼은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었다.
처음 넘길 때는 거친 느낌 없이 목을 타고 부드럽게 흘러가다가, 그 끝자락에서 쓴맛이 짧게 고개를 들고, 그게 채 사라지기도 전에 은근한 단맛이 뒤따라와 입 안을 마무리해주는 식이었다.
한 잔을 다 비우고 나서도 그 순서만큼은 계속 같은 리듬으로 반복돼서, 나중에는 그 쓴맛과 단맛이 오가는 타이밍을 기다리는 재미로 마시게 됐다.
화려하게 여러 향이 한꺼번에 몰아치는 술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단순한 리듬 하나가 매번 정확하게 반복된다는 점이 오히려 이 술의 성격처럼 느껴졌다.
스트레이트로 마실 때든, 얼음을 한두 개 띄워 마실 때든 이 순서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는데, 그 일관성이 좋게 말하면 신뢰감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어느 순간부터는 다소 예측 가능한 심심함이기도 했다.
사과 향 뒤에 숨은 낯선 냄새
향에서는 딘스톤 버진 오크와 비슷한 사과 향이 스멀스멀 올라오는데, 거기에 뭔가 조금 더 화학적인 느낌이 섞여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잘 익은 사과보다는 사과 향 캔디나 인공 향료 쪽에 더 가까운, 살짝 날이 선 듯한 단내였다.
지인 중 한 명은 여기서 감초 맛이 난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듣고 다시 코를 가져다 대보니 어쩌면 나에게 화학적으로 느껴졌던 그 약간의 한약재 같은 뉘앙스가 바로 그 감초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잔을 두고도 누구는 사과를, 누구는 감초를, 나는 그 사이 어딘가의 화학적인 무언가를 맡았다는 게 신기했다.
결국 같은 향도 각자의 기억 서랍 속 어떤 냄새와 먼저 연결되느냐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거구나 싶었던, 작지만 인상 깊은 순간이었다.
향 하나를 두고 몇 사람이 서로 다른 단어를 꺼내 놓는 그 장면이, 어쩌면 이 술을 마시면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기억에 없는 서른 해의 맛
발렌타인 30년도 살면서 두어 번, 어쩌면 세 번쯤 마셔본 기억은 있는데, 정작 그 아로마나 팔레트가 어땠는지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위스키보다는 소주를 더 즐기던 20대 시절, 누군가 귀한 병이라며 꺼내준 자리에서 “오, 이게 그 유명한 발렌타인 30년이야?” 하며 홀짝홀짝 마셨던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때는 잔에 코를 박고 향을 가늠해볼 생각도, 입 안에서 맛을 굴려볼 여유도 없었다.
그저 이름값에 압도돼서 “귀한 걸 마시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취해 있었던 셈이다.
지금 와서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그날 잔에 무슨 향이 있었는지는 끝내 떠오르지 않고, 오히려 그 자리의 분위기와 누구와 있었는지만 어렴풋이 남아 있다.
술을 제대로 음미하는 법을 몰랐던 그때의 내가 지금 이 21년을 다시 앞에 두고 있으니, 같은 이름 앞에서도 술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새삼스럽다.
이런 자리에 어울리는 위스키
혼자 조용히 잔을 들고 향과 맛을 하나하나 분해해보는 자리보다는,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가볍게 나눠 마시는 자리에 이 술이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맛의 변화 폭이 크지 않고 리듬이 일정한 편이라, 위스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처음 접하기에도 부담이 적다.
실제로 이 병을 비우는 동안 위스키를 잘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한 자리가 많았는데, 다들 “부드럽다”, “생각보다 독하지 않다”는 반응이 먼저 나왔다.
스트레이트로도 무난하지만 하이볼로 만들어도 그 쓴맛-단맛의 리듬이 은근히 살아 있어서, 손님 접대용이나 가벼운 술자리의 베이스로 쓰기에는 꽤 실용적인 병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깊이 파고들며 감탄할 술이라기보다는, 그 자리의 온도를 딱 적당히 데워주는 역할에 충실한 술이었다.
그래도 내 돈 주고는
아무리 마시고 또 마셔봐도, 이 녀석을 내 돈 주고 살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이고, 발렌타인을 최애로 꼽는 사람들을 평가할 생각은 전혀 없다.
미국의 동네 리쿼샵에서는 Finest 정도를 빼면 12년조차 찾기 힘들고, 21년이나 30년은 말할 것도 없다.
Frootbat이나 Reservebar 같은 큰 온라인 셀러가 아니면 잘 보이지도 않는 데다, 같은 21년이라도 파는 곳마다 가격이 들쭉날쭉해서 어디서 얼마에 사야 적당한 건지 감을 잡기도 힘들다.
굳이 그런 스트레스까지 받아가며 찾아 마실 정도의 술은 아니라는 게 지금까지의 결론이다.
그래도 이름만으로 이미 익숙했던 그 병을, 이렇게 한 병 다 비울 때까지 곁에 두고 마셔본 경험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드라마 속에서 스치듯 봤던 병을 몇십 년 만에 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비우기까지, 그 시간의 거리만큼은 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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