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수를 사려고 보다 보면 같은 브랜드 안에서도 이름 뒤에 조금씩 다른 단어가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Eau de Toilette.
Eau de Parfum.
Parfum.
줄여서 EDT, EDP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처음 향수를 고를 때는 이 차이가 꽤 헷갈린다.
인터넷에서 조금 찾아보면 대체로 이런 설명을 만나게 된다.
“EDT는 향이 연하고 오래가지 않는다.”
“EDP는 더 진하고 오래간다.”
“Parfum은 가장 농도가 높고 가장 오래간다.”
그래서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면 이런 생각도 들 수 있다.
‘그럼 무조건 EDP나 Parfum을 사는 게 이득 아닌가?’
나 역시 예전에는 EDT와 EDP의 차이를 거의 이런 식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여러 향수를 맡다 보면 이야기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EDT는 예상보다 꽤 오래가고, 어떤 EDP는 몇 시간이 지나면 피부 가까이에서만 느껴진다.
더 재미있는 것은 같은 이름을 가진 EDT와 EDP인데도 단순히 향의 세기만 다른 것이 아니라, 처음 맡았을 때부터 분위기가 꽤 다르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EDT와 EDP의 진짜 차이는 무엇일까?
EDT와 EDP는 기본적으로 향료의 농도와 관련된 구분이다
향수는 향료 원액만 병에 담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스프레이형 향수는 여러 향료 성분을 알코올 등의 베이스에 섞어 만들어지고, 향료 성분의 농도와 제품의 구성에 따라 Eau de Toilette, Eau de Parfum, Parfum 같은 표현이 사용된다.
대략적인 기준으로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
| 구분 | 흔히 이야기되는 향료 농도 |
|---|---|
| Eau de Cologne, EDC | 약 2~5% |
| Eau de Toilette, EDT | 약 5~15% |
| Eau de Parfum, EDP | 약 15~20% |
| Parfum / Extrait | 약 20~30% 이상 |
다만 이 숫자를 절대적인 규격처럼 볼 필요는 없다.
자료에 따라 제시되는 범위가 조금씩 다르고, 실제 제품 역시 브랜드와 향수의 구성에 따라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향수 농도를 설명하는 자료에서도 EDT와 EDP의 범위가 서로 다르게 제시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EDT는 반드시 몇 %, EDP는 반드시 몇 %여야 한다고 외우는 것보다, 일반적으로 EDP가 EDT보다 높은 향료 농도로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이해하는 편이 낫다.
그래도 기본적인 방향은 있다.
EDC → EDT → EDP → Parfum으로 갈수록 일반적으로 향료의 비율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생긴다.
농도가 높으면 정말 더 오래갈까?
대체로는 그렇다.
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일반적으로 향료 농도가 높아지면 피부에 향이 더 오래 남는 경향이 있어 EDT보다 EDP가 긴 지속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Parfum이나 Extrait에서 오래 지속되는 제품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하지만 실제 지속시간은 향료의 종류와 조합, 피부 상태, 환경 등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향수의 지속력을 향료 농도 하나만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
향수를 이루는 향료들이 무엇인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볍고 휘발이 빠른 향을 중심으로 구성된 향수와, 우디·레진·머스크처럼 비교적 오래 남는 느낌의 재료를 중심으로 만든 향수는 같은 농도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느껴지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
향수 안의 여러 향료 성분이 똑같은 속도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이전 글인 향수는 왜 시간이 지나면 향이 달라질까: 탑노트·미들노트·베이스노트 쉽게 이해하기에서도 다룬 적이 있다.
향수를 처음 뿌렸을 때 강하게 느껴지던 밝고 가벼운 향이 먼저 약해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잔향이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단순히 EDT는 4시간, EDP는 8시간처럼 계산하는 것은 실제 향수를 설명하기에는 너무 단순하다.
더 진한데 오히려 덜 퍼지는 향수도 있다
여기서 또 하나 헷갈리기 쉬운 부분이 있다.
지속력과 발향력은 같은 것이 아니다.
향수가 오래 남는다는 것은 향료가 피부나 옷에 오랫동안 남아 있다는 의미에 가깝고, 향이 멀리까지 강하게 퍼진다는 것은 주변 공기 속으로 향료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퍼져 나오는지와 관련된다.
그래서 농도가 높은 Parfum이 반드시 EDT보다 주변 사람에게 훨씬 강하게 느껴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향수는 처음 한두 시간 동안 넓게 퍼졌다가 빠르게 조용해질 수 있고, 어떤 향수는 처음부터 피부 가까이에 머물면서도 아주 오랫동안 잔향이 남을 수 있다.
향수에서 흔히 말하는 projection, 즉 발향과 longevity, 지속력은 구분해서 보는 편이 좋다.
이 차이는 향수를 어디에 뿌리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손목, 목, 옷에서 향이 퍼지고 남는 방식이 다른 이유는 이전에 쓴 향수는 어디에 뿌려야 오래갈까?: 손목·목·옷에 뿌렸을 때 차이에서 조금 더 자세히 다뤘다.
결국 향수병에 EDP라고 적혀 있다는 사실만으로 실제 지속시간과 발향 범위를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다.
같은 향수의 EDT와 EDP는 단순히 물을 더 탄 차이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EDT와 EDP를 이야기할 때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이것이다.
같은 이름의 향수가 EDT와 EDP 두 가지로 판매되고 있다고 해보자.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EDT의 향료 농도를 높이면 EDP.
즉 같은 향을 더 진하게 만든 것이 EDP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향수에서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
브랜드가 EDT와 EDP를 만들면서 단순히 향료의 양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조향 자체를 다시 조정하기도 한다.
Diptyque도 EDT와 EDP를 같은 향의 이야기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설명하면서, EDP가 단순히 EDT의 농도만 높인 제품이 아니라 조향사가 구성의 특정 면을 강조하거나 새로운 재료 또는 어코드를 더할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같은 이름의 향수라도 EDT에서는 시트러스나 그린 계열의 밝은 느낌이 더 잘 드러나고, EDP에서는 우디하거나 달고 묵직한 부분이 더 강조되는 식의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이 경우 둘의 관계는 연한 버전과 진한 버전이라기보다는 조금 다른 해석의 두 향수에 가까워진다.
이것이 EDT와 EDP를 살 때 숫자나 농도만 보고 결정하면 아쉬울 수 있는 이유다.
EDP가 EDT보다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다
농도가 높고 지속력이 길다면 EDP가 무조건 상위 버전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향수에서 오래가는 것이 항상 더 좋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한여름에 하루 종일 야외에서 사용할 향수를 찾고 있다면 밝고 가볍게 퍼지는 EDT가 오히려 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반대로 추운 날씨나 저녁 시간에 조금 더 묵직하고 잔향이 긴 향을 원한다면 EDP나 Parfum이 더 마음에 들 수도 있다.
같은 향수도 온도와 습도에 따라 느껴지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는 같은 향수가 계절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 여름과 겨울 향수 차이에서도 다뤘다.
여름에 사용했을 때는 조금 답답했던 EDP가 겨울에는 부드럽고 편안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겨울에 너무 가볍게 느껴졌던 EDT가 여름에는 오히려 시원하고 깔끔하게 느껴질 수 있다.
따라서 EDT와 EDP 가운데 무엇이 더 좋은지를 묻기보다는, 내가 언제,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편이 낫다.
지속력이 약하다고 느껴진다고 바로 EDP로 바꿀 필요도 없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EDT가 너무 빨리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EDP로 바꾸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하지만 그전에 한 가지는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정말 향수가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 향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다.
아침에 향수를 뿌리고 계속 같은 향에 노출되면 후각이 그 냄새에 익숙해지면서 향이 이전보다 약하게 느껴질 수 있다.
나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옆 사람에게는 아직 향이 충분히 느껴지는 경우가 바로 이것이다.
이 현상은 내 향수 냄새가 나만 안 느껴지는 이유: 후각 적응과 노즈 블라인드에서 따로 이야기했다.
따라서 EDT를 뿌리고 두세 시간 뒤 내가 향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반드시 지속력이 두세 시간이라는 뜻은 아니다.
특히 목이나 가슴처럼 코와 가까운 곳에 향수를 많이 사용했다면 후각 적응 때문에 더 빨리 사라진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매장에서는 EDT와 EDP를 둘 다 피부에 맡아보는 편이 좋다
같은 향수의 EDT와 EDP 가운데 고민하고 있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직접 비교하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시향지에서만 비교하지 말고 피부에서도 맡아보는 편이 좋다.
처음 뿌렸을 때 어떤 쪽이 마음에 드는지.
30분 정도 지났을 때는 어떻게 변하는지.
몇 시간이 지난 뒤 피부에는 무엇이 남는지.
이 과정을 비교해보면 단순히 어느 쪽이 더 진한지를 넘어, 어느 버전의 향 전개가 내 취향에 맞는지 알 수 있다.
시향지에서 좋았던 향수가 피부에서는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시향지에서는 좋았는데 피부에서는 달랐던 향수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다.
특히 가격대가 높은 향수라면 매장에서 첫 향만 맡고 EDT와 EDP 가운데 바로 하나를 선택하기보다, 각각 피부에 테스트해보고 시간을 두는 편이 좋다.
의외로 평소에는 무조건 EDP가 좋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특정 향수에서는 EDT가 더 마음에 들 수 있다.
EDT와 EDP 중 어떤 것을 사야 할까?
아주 단순하게 정리한다면 이렇다.
가볍고 산뜻한 느낌을 좋아하고, 낮이나 더운 계절에 부담 없이 사용하고 싶다면 EDT가 잘 맞을 가능성이 있다.
조금 더 풍부한 잔향과 긴 지속력을 원하고, 하루 동안 자주 덧뿌리고 싶지 않다면 EDP를 먼저 살펴볼 수 있다.
향이 피부에 오래 머무르는 느낌과 보다 농밀한 표현을 원한다면 Parfum이나 Extrait까지 선택지가 넓어진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출발점이다.
EDT라고 무조건 가볍고 짧게 끝나는 것도 아니고, EDP라고 무조건 무겁고 오래가는 것도 아니다.
같은 이름의 향수라도 EDT와 EDP가 보여주는 향의 분위기와 전개는 꽤 다를 수 있다.
결국 농도 표기만 보고 고르기보다 직접 맡아보고 비교해보는 것이 가장 좋다.
결국 EDT와 EDP는 서열이 아니다
향수를 처음 고를 때는 EDC, EDT, EDP, Parfum이라는 이름이 마치 향수의 등급처럼 보인다.
EDT보다 EDP가 위에 있고, EDP보다 Parfum이 더 좋은 제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단순한 서열에 가깝지 않다.
향료의 농도는 향수의 성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지만, 그 향수를 완성하는 것은 어떤 향료를 어떻게 조합했는지, 어떤 부분을 강조했는지, 피부에서 어떻게 변하는지, 그리고 내가 어떤 환경에서 사용하는지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EDT와 EDP 사이에서 고민할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의외로 단순하다.
더 진한 쪽이 아니라, 더 마음에 드는 쪽.
몇 시간 더 오래가는 향수보다 처음부터 마지막 잔향까지 내가 좋아하는 향수가 결국 손이 더 자주 간다.
향수를 숫자로만 고르기 어려운 이유가 아마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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