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커피는 첫 모금의 화사한 산미로 기억되고, 어떤 커피는 잔을 내려놓은 뒤에도 입안에 남아 있는 묵직한 여운으로 기억된다.
Klatch Coffee의 Old World Venezia Blend는 후자에 가까웠다.
봉투에는 Medium-Dark Roast라는 설명과 함께 Rich, Smooth, Aromatic이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베네치아의 오래된 이탈리아 카페를 떠올리게 하는 풀 바디 블렌드라는 설명도 덧붙어 있다.
처음에는 이런 문장이 조금 과장된 표현처럼 보였다.
하지만 커피를 내리고 첫 모금을 마신 뒤에는 왜 굳이 Venezia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커피에서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다크 초콜릿을 닮은 쌉쌀함이었다.
설탕이 많이 들어간 초콜릿처럼 부드럽고 직접적인 단맛이 먼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카카오 함량이 높은 다크 초콜릿 한 조각을 입안에서 천천히 녹였을 때처럼, 짙고 건조한 쌉쌀함이 혀 위에 먼저 자리 잡는다.
그렇다고 탄 원두에서 느껴지는 거칠고 날카로운 쓴맛은 아니었다.
로스팅에서 만들어진 깊은 향과 은근한 단맛이 쓴맛의 가장자리를 둥글게 다듬어준다.
첫 순간에는 분명 진하지만, 입안에 머무는 동안에는 조금씩 부드러워진다.
바디감은 꽤 풍성하다.
가볍게 혀를 스치고 사라지는 커피라기보다, 입안 전체를 천천히 채우며 자신의 존재를 남기는 커피다.
물처럼 얇게 흩어지지 않고, 매끄러운 질감이 혀와 입천장 사이에 잠시 머문다.
산미는 앞에 나서지 않는다.
과일이나 꽃을 바로 떠올리게 하는 밝은 향보다는 볶은 원두의 깊은 향과 다크 초콜릿의 쌉쌀함, 그리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은근한 단맛이 중심을 잡는다.
그래서인지 이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화창한 낮의 베네치아보다 해가 지기 시작한 뒤의 베네치아가 떠오른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넓은 광장보다는 운하 옆의 좁은 골목, 오랜 시간 사람들의 손이 닿아 조금씩 닳은 나무 테이블, 젖은 돌길 위로 번지는 저녁 불빛에 가까운 분위기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오래되었고, 밝지는 않지만 따뜻하다.
낭만적이지만 그 낭만 안에 약간의 쓸쓸함이 섞여 있다.
어쩌면 내가 느낀 다크 초콜릿의 쌉쌀함도 그런 분위기와 닮아 있었는지 모른다.
가끔은 원래 나와 아무 관계도 없던 무언가가 내 안으로 들어와 나를 조금씩 바꾸기도 한다.
원두가 갈리고 물을 만나 향으로 피어나면서 후각 점막을 자극하고, 한 모금의 맛이 되어 혀 위의 촘촘한 미뢰를 감싼다.
그렇게 커피 한 잔은 단순한 음료로 끝나지 않고 그날의 기분과 생각까지 조금씩 움직인다.
내가 처음 설탕이나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블랙커피를 마신 곳은 해부학 시험을 준비하던 도서관이었다.
그전까지 내가 알고 있던 커피는 대부분 레쓰비 같은 달콤한 캔커피였다.
우유와 설탕이 커피의 쓴맛을 거의 모두 덮고 있었고, 나는 그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을 커피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커피의 쓴맛을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하지 않았다는 표현보다 싫어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달지 않은 커피를 굳이 돈을 주고 마시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쓴맛을 참고 마시는 것이 어른스러운 행동처럼 보이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처음 마신 블랙커피 역시 맛있지는 않았다.
혀에 남는 쓴맛이 낯설었고, 아무리 기다려도 캔커피에서 느끼던 익숙한 단맛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는 그 한 잔이 언젠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맛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조금씩 변했다.
나이가 들면서 마음과 생각에도 이전에는 없던 쓴맛이 조금씩 스며들었다.
그 쓴맛이 반드시 나쁜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조금 더 현실적으로 바라보게 된 경험일 수도 있고, 쉽게 지나칠 수 있었던 감정의 무게를 이해하게 된 과정일 수도 있다.
단맛만 알던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깊이를 쓴맛을 통해 알게 되는 순간도 있다.
커피의 쓴맛도 그와 비슷했다.
처음에는 피하고 싶었던 맛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단맛을 더 깊게 만들어주는 배경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다크 초콜릿이 설탕처럼 달지 않아도 충분히 매력적인 것처럼, 커피도 달지 않을 때 오히려 더 오래 머무는 맛을 보여주기도 한다.
내가 커피와 닮아가면서 커피를 좋아하게 된 것인지, 커피를 오래 좋아하다 보니 조금씩 그 맛을 닮아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닮았기 때문에 좋아하게 된 것일까.
좋아했기 때문에 닮아간 것일까.
정확한 답은 없지만, 지금의 나는 커피와 그 안에 담긴 쓴맛을 예전보다 훨씬 더 좋아한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마음 한편으로는, 내 일상에서 더 이상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오래 곁에 둘 커피를 기다려왔던 것 같다.
매일 마셔도 쉽게 질리지 않고, 하루를 시작할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며, 마시지 않은 날에는 무언가 빠진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커피 말이다.
Old World Venezia Blend를 마시면서 문득, 어쩌면 내가 오래 찾던 커피를 드디어 만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베네치아의 어두운 수로를 오래 헤매다 탁 트인 운하로 나와 수면 위에 부서지는 달빛을 처음 마주한 것처럼, 이 커피는 익숙한 쓴맛 속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선명함으로 다가왔다.
그 선명함은 오래전부터 커피의 쓴맛 안에 숨어 있었고, 나는 이제야 비로소 그것을 알아본 듯했다.
Old World Venezia Blend는 내가 커피의 쓴맛을 받아들이며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하는 동시에, 앞으로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커피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 블렌드였다.
첫 모금에서는 다크 초콜릿처럼 짙고 쌉쌀하지만, 그 맛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부드러운 질감과 은근한 단맛이 나타난다.
강한 쓴맛만 남기는 커피가 아니라, 쓴맛 안에도 깊이와 부드러움, 은근한 단맛이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화사한 과일 산미나 선명한 꽃향을 찾는 사람에게는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반대로 산미가 강한 커피보다 묵직한 풀 바디와 다크 초콜릿 같은 풍미, 부드럽게 이어지는 미디엄 다크 로스트의 쌉쌀함을 좋아한다면 편안하게 다가올 만한 블렌드다.
이 커피가 실제로 나를 베네치아의 카페로 데려가지는 않는다.
대신 베네치아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오래된 도시의 저녁과 운하 옆 작은 카페를 상상하게 만든다.
아마 그것이 이 커피가 말하는 낭만일 것이다.
달콤하기만 하지 않고, 쌉쌀하기만 하지도 않은 것.
따뜻함과 쓸쓸함이 함께 있고, 오래된 기억과 아직 경험하지 않은 장면이 한 잔 안에서 조용히 섞이는 것.
어린 시절에는 커피의 쓴맛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 커피는 내 하루를 여는 가장 익숙한 존재가 되었다.
아침의 첫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밤이 되어 침대에 누울 때까지 그날 마신 커피의 향과 여운이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
Klatch Coffee Old World Venezia Blend는 내가 왜 커피의 쓴맛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 커피였다.
다크 초콜릿처럼 진하고, 오래된 도시의 저녁처럼 부드러우며, 베네치아의 낭만처럼 약간은 쓸쓸한 한 잔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오래전부터 찾고 있던, 내 하루에서 쉽게 빼놓을 수 없는 커피가 바로 이런 모습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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