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역이라는 병을 마지막으로 걱정해본 게 언제였는지 생각해보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2000년에 홍역이 ‘퇴치(eliminated)’된 것으로 공식 선언됐고, 그 이후에는 일상에서 흔히 마주치는 감염병이라기보다 과거에 유행했던 질병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런데 2026년에는 상황이 꽤 달라졌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9월 17일까지 미국에서 확인된 홍역 환자는 3,471명이다.
1991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로, 35년 만에 미국에서 가장 큰 홍역 유행이 나타난 셈이다.
특히 펜실베니아에서는 9월 18일까지 38개 카운티에서 767명의 환자가 확인됐고, 150명이 입원한 것으로 집계됐다.
펜실베니아 보건부가 확인한 홍역 관련 사망도 네 건으로 늘었다.
한동안 거의 들리지 않던 질병에서 다시 수천 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실제 사망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홍역은 원래 이렇게 위험한 병이었을까.
그리고 백신을 맞지 않는다는 것은 실제로 어느 정도의 위험을 의미할까?
홍역이 ‘퇴치’됐다는데 왜 다시 이렇게 퍼지는 걸까?
먼저 미국이 2000년에 홍역을 퇴치했다는 말부터 조금 다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홍역 바이러스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쉽게 말하면 미국 안에서 홍역이 사람에서 사람으로 계속 이어지면서 1년 이상 퍼지는 상황이 없어졌다는 의미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는 여전히 홍역이 발생하기 때문에 해외에서 감염된 사람이 미국으로 들어오는 일 자체는 계속 생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바이러스가 미국으로 들어오느냐보다, 들어온 바이러스가 그다음 사람에게 계속 옮겨갈 수 있느냐다.
올해 미국에서 확인된 홍역 사례의 약 95%가 서로 연관된 집단발생에 포함돼 있다는 점이 그래서 중요하다.
해외에서 감염된 사람 한두 명이 발견되고 끝난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가 지역사회 안에서 여러 사람을 거치며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예방접종률도 함께 봐야 한다.
미국 유치원생의 MMR 백신 접종률은 2019~2020학년도 95.2%에서 2025~2026학년도 92.4%로 내려왔다.
몇 퍼센트포인트 차이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홍역처럼 전염력이 매우 높은 질병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홍역은 한 사람이 감염됐을 때 주변의 면역이 없는 사람에게 매우 쉽게 퍼지기 때문에, 접종률이 높은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전국 평균만 보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미국 전체 접종률이 92%라고 해서 모든 학교와 모든 지역의 접종률이 92%인 것은 아니다.
어떤 지역은 대부분이 접종돼 있는 반면, 특정 학교나 지역사회에는 접종하지 않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모여 있을 수 있다.
이런 곳에 홍역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바이러스가 다음 사람, 또 그다음 사람으로 이동하기 쉬워진다.
그래서 현재 상황을 “홍역 바이러스가 갑자기 더 강해졌다”고 보는 것보다는, 홍역이 다시 퍼질 수 있는 빈틈이 커졌다고 이해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홍역은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홍역이 특히 까다로운 이유는 전염력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홍역 환자가 기침하거나 재채기하면서 내보낸 바이러스는 공기를 통해 퍼질 수 있고, 감염자가 공간을 떠난 뒤에도 최대 약 2시간 동안 감염 가능성이 남을 수 있다.
즉 반드시 홍역 환자와 마주 앉아 오랫동안 대화를 해야만 감염되는 것은 아니다.
면역이 없는 사람이 홍역 환자와 가까이 접촉하면 최대 10명 중 9명 정도가 감염될 수 있다고 CDC는 설명한다.
더 어려운 점은 우리가 홍역을 알아차리기 전부터 이미 전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홍역은 처음부터 특징적인 붉은 발진이 나타나는 병이 아니다.
처음에는 고열, 기침, 콧물, 충혈되고 눈물이 나는 눈처럼 감기나 다른 호흡기 감염에서도 볼 수 있는 증상이 먼저 나타난다.
그러다가 며칠 뒤 얼굴 주변에서 시작한 발진이 몸 아래쪽으로 퍼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는 시기는 보통 발진이 나타나기 약 4일 전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본인이 “이게 홍역인가?”라고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며칠 동안 주변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특성을 생각하면 학교나 교회처럼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뿐 아니라 병원 대기실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홍역이 의심되는 사람이 아무 연락 없이 일반 대기실에 들어가면 아직 백신을 맞을 수 없는 어린 영아나 임신부, 면역이 약한 환자까지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역은 단순히 열이 나고 발진이 생기는 병일까?
홍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붉은 발진이다.
그래서 며칠 동안 열이 나고 피부에 발진이 생겼다가 회복되는 어린이 감염병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대부분의 환자는 회복한다.
하지만 일부 환자에서는 폐렴이나 뇌염처럼 훨씬 심각한 합병증이 생길 수 있고, 입원이 필요하거나 드물게 사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CDC는 미국에서 홍역에 걸린 미접종자 약 5명 중 1명이 입원한다고 설명한다.
어린이에서는 약 20명 중 1명에게 폐렴이 생길 수 있으며, 폐렴은 홍역에 걸린 어린아이에서 중요한 사망 원인 가운데 하나다.
약 1,000명 중 1명에서는 뇌에 염증이 생기는 뇌염이 발생할 수 있고, 경련이나 영구적인 뇌 손상이 남을 수도 있다.
또 홍역에 걸린 어린이 1,000명 가운데 약 1~3명은 호흡기나 신경계 합병증으로 사망할 수 있다.
숫자만 보면 1,000명 중 1명이라는 위험은 작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홍역처럼 빠르게 퍼지는 질병에서는 감염되는 사람 자체가 많아질수록 드문 합병증을 실제로 겪는 사람의 숫자도 함께 늘어난다.
현재 펜실베니아에서 확인된 767명의 환자 가운데 150명이 입원했다는 사실을 보면 홍역을 단순한 발진성 질환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펜실베니아의 사망자 네 명은 모두 백신을 맞지 않았다
이번 펜실베니아 유행에서 특히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다.
주 보건부가 지금까지 확인한 네 건의 홍역 관련 사망에서 사망자 네 명 모두 홍역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 사실만으로 모든 미접종자가 심각한 합병증을 겪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홍역에 걸려도 회복하는 사람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방할 방법이 있는 감염병에서 실제 입원과 사망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여기서 ‘홍역 관련 사망’이라는 표현도 조금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
보건당국이 홍역 관련 사망으로 집계했다고 해서, 사망진단서에 홍역만 유일한 원인으로 적혔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펜실베니아 보건부는 검사로 확인된 홍역 환자가 증상 시작 뒤 30일 안에 사망했고, 교통사고처럼 홍역과 무관한 원인이 아니라는 등의 기준을 충족할 때 홍역 관련 사망으로 집계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현재 숫자는 “펜실베니아 보건부가 네 건의 홍역 관련 사망을 확인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헤드라인의 숫자만 보고 홍역이 네 사람의 유일한 사망 원인이었다고 단정하는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MMR 백신은 얼마나 잘 막아줄까?
MMR은 홍역(measles), 유행성이하선염(mumps), 풍진(rubella)을 함께 예방하는 백신이다.
CDC에 따르면 MMR 백신을 한 번 맞으면 홍역 예방 효과가 약 93%, 두 번 맞으면 약 97%다.
그렇다고 두 번 접종한 사람에게 홍역이 절대로 생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드물게 접종을 완료한 사람에게도 감염이 생길 수 있다.
97%라는 숫자도 조금 주의해서 이해해야 한다.
“백신을 맞은 사람 가운데 3%가 언젠가는 홍역에 걸린다”는 뜻이 아니다.
홍역 바이러스에 실제로 노출됐을 때 백신이 감염을 막아주는 효과를 나타내는 숫자에 가깝다.
따라서 두 차례 접종을 완료했다면 감염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지만 완전히 0이 되는 것은 아니다.
펜실베니아의 현재 상황에서도 이런 차이가 보인다.
9월 18일까지 확인된 767명의 환자 가운데 적절하게 백신을 접종한 것으로 확인된 환자는 네 명으로 전체의 1% 미만이었다.
다만 이 숫자를 그대로 이용해 “미접종자는 정확히 몇 배 더 위험하다”고 계산할 수는 없다.
접종한 사람과 접종하지 않은 사람의 전체 인구 규모도 다르고, 연령이나 바이러스에 노출된 정도도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자료에서 가장 무리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번 유행이 주로 홍역에 대한 면역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백신을 맞는 것이 다른 사람과도 관계가 있을까?
예방접종은 흔히 내가 감염되지 않기 위해 맞는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그게 가장 직접적인 목적이다.
하지만 홍역처럼 전염력이 높은 감염병에서는 주변 사람에게 바이러스가 넘어가는 길을 줄이는 역할도 중요하다.
홍역 백신을 맞고 싶어도 맞을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아직 정규 MMR 접종 시기가 되지 않은 어린 영아가 있고, 임신 중이거나 특정한 면역저하 상태 때문에 생백신인 MMR을 접종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주변에 면역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가 중요해진다.
집단면역이라는 말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바이러스가 한 사람에게 들어왔더라도 다음 사람에게 넘어갈 때마다 면역을 가진 사람에게 막힌다면 유행은 커지기 어렵다.
반대로 면역이 없는 사람들이 한곳에 많이 모여 있다면 바이러스가 계속 이동할 수 있는 길이 만들어진다.
홍역은 워낙 쉽게 퍼지기 때문에 이 차이가 다른 많은 감염병보다 더 중요하다.
홍역에서 회복하면 완전히 끝나는 걸까?
대부분의 사람은 홍역에서 회복한 뒤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매우 드물게 훨씬 늦게 나타나는 합병증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아급성 경화성 범뇌염, 영어로 SSPE라고 부르는 질환이다.
홍역에 걸렸을 때 바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감염에서 회복한 뒤 여러 해가 지나 뇌 기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매우 드문 합병증이다.
행동이나 인지 기능의 변화, 경련, 신경학적 이상이 점차 진행할 수 있고 결국 치명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홍역은 면역 체계에도 흥미로운 흔적을 남길 수 있다.
우리 몸은 이전에 만났던 바이러스와 세균을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다.
한 번 감염됐거나 백신을 맞았던 질병을 다음에 다시 만났을 때 더 빨리 대응할 수 있는 이유다.
그런데 홍역은 이미 만들어져 있던 이런 면역 기억의 일부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를 흔히 ‘면역 기억 상실(immune amnesia)’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하면 홍역에서 회복했다고 해서 단순히 “홍역 하나 앓고 끝났다”고만 보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어릴 때 MMR을 맞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이번 유행 소식을 보면서 성인이라면 이 질문이 가장 현실적일 수도 있다.
어릴 때 예방주사를 여러 번 맞은 기억은 있지만 그중에 MMR이 있었는지, 한 번 맞았는지 두 번 맞았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이번 유행 때문에 모든 성인이 무조건 MMR을 한 번 더 맞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출생연도와 과거 예방접종 기록, 직업, 학교 생활, 해외여행 여부 등에 따라 홍역에 대한 면역을 어떻게 확인하는지가 달라진다.
이미 적절한 접종 기록이 있거나 다른 방법으로 면역이 확인되는 사람이라면 추가 접종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접종 기록이 전혀 없다면 “어릴 때 아마 맞았겠지”라고 기억에만 의존하는 것보다는 실제 기록을 한번 확인해보는 편이 낫다.
특히 의료기관에서 일하거나 대학에 다니거나 해외여행을 앞두고 있는 사람처럼 홍역에 노출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경우에는 필요한 접종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유행 소식을 보고 모두가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의 접종 기록을 확인하는 것이다.
홍역이 의심된다면 바로 병원으로 가면 될까?
홍역처럼 공기로 쉽게 퍼질 수 있는 질병에서는 병원을 찾는 방법도 중요하다.
홍역 환자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으면서 고열, 기침, 콧물, 눈 충혈, 발진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면 아무 연락 없이 병원 대기실로 바로 들어가는 것은 피하는 편이 좋다.
먼저 의료기관에 전화해 홍역 노출 가능성과 현재 증상을 알리면 의료기관에서 방문 방법을 안내할 수 있다.
필요하면 다른 환자와 동선을 분리하거나 별도의 장소에서 진료하도록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반 대기실에는 아직 백신을 맞을 수 없는 영아나 임신부, 면역이 약한 사람이 있을 수 있어 추가 노출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또 홍역은 노출된 바로 다음 날 증상이 나타나는 병도 아니다.
바이러스에 노출된 뒤 증상은 대체로 7~14일 안에 시작하고, 발진은 그보다 며칠 뒤 나타난다.
노출 뒤 약 2주가 지났다고 해서 무조건 안전하다고 단정하기보다는, 보건당국이나 의료기관이 안내한 관찰 기간을 따르는 편이 좋다.
따라서 알려진 홍역 노출이 있었다면 며칠 동안 아무 증상이 없었다는 것만으로 감염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번 유행에서 정말 눈여겨봐야 할 것은 ‘3,471명’만이 아니다
처음 이 소식을 보면 아무래도 “35년 만에 최다”라는 숫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나 역시 처음에는 3,471명이라는 숫자에 먼저 시선이 갔다.
하지만 자료를 하나씩 살펴보면서 더 눈에 들어온 것은 홍역이 새로운 질병도, 예방 방법을 모르는 질병도 아니라는 점이었다.
미국은 이미 2000년에 홍역의 지속적인 국내 전파를 끊는 데 성공했다.
MMR 백신도 오래전부터 사용돼 왔고 두 번 접종했을 때 홍역을 예방하는 효과도 매우 높다.
그런데 예방접종률이 조금씩 낮아지고 면역이 없는 사람들이 특정 지역에 모이면서, 한동안 보기 힘들었던 질병이 다시 수천 명 규모의 유행으로 돌아왔다.
현재 미국 홍역 사례 대부분이 집단발생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도 이 흐름을 잘 보여준다.
백신이 모든 감염을 100% 막는 것은 아니다.
홍역에 걸린 모든 사람이 심각한 합병증을 겪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홍역을 단순히 열이 나고 발진이 생겼다가 지나가는 병으로만 보는 것도 현재 상황과는 맞지 않는다.
실제로 입원과 폐렴, 뇌염 같은 합병증이 생길 수 있고, 2026년 미국에서는 다시 수천 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어떤 질병이 오랫동안 우리 주변에서 보이지 않으면 그 질병 자체가 별것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이번 미국 홍역 유행은 오히려 반대 방향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홍역이 한동안 보기 힘든 질병이었던 이유는 원래 위험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동안 예방이 잘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일 수 있다.
관련 증상이 있거나 건강에 대한 우려가 있다면 의료진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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