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리학자로 이식센터에서 일하다 보면 폐이식 전 평가 과정에서 공여자와 수여자의 흡연력, 그리고 전자담배 사용력을 함께 확인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전자담배가 기존 담배와 완전히 같은 위험을 가진다는 뜻은 아니지만, 사용 제품과 기간, 니코틴 여부를 따로 물어야 할 만큼 건강 영향에 관한 질문이 늘었기 때문이다.
2019년 EVALI(E-cigarette or Vaping use-Associated Lung Injury) 유행은 전자 흡입 제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폐손상 수준을 넘어 “과일향 전자담배가 유전자를 변형시킨다”는 주장이 SNS와 커뮤니티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다.
2026년 6월 발표된 연구가 이 주장의 근거로 자주 인용되는데, 제목만 보면 전자담배가 몸속 유전자 자체를 바꿔놓는다는 인상을 준다.
정말 전자담배가, 그것도 유독 과일향이 유전자를 ‘변형’시킨다는 뜻일까?
먼저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연구가 측정한 것은 DNA 염기서열의 돌연변이가 아니라 구강세포에서 나타난 유전자 발현 변화다.
이 차이는 단어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유전 정보 자체가 바뀌었다는 말과, 이미 가진 유전자 가운데 무엇이 얼마나 활발히 작동하는지가 달라졌다는 말은 생물학적으로 전혀 다른 이야기다.
관찰된 결과와 그 결과가 실제로 의미하는 바 사이의 거리를 하나씩 짚어볼 필요가 있다.
‘유전자 변형’이라는 말은 정확히 무엇을 가리킬까?
“유전자 변형”이라는 말을 들으면 보통 두 가지를 떠올린다.
하나는 GMO처럼 DNA 염기서열 자체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방사선이나 특정 화학물질 노출 뒤 DNA에 돌연변이가 생기는 경우다.
두 경우 모두 DNA를 이루는 염기서열, 즉 유전정보의 내용 자체가 달라진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화제가 된 연구가 실제로 측정한 것은 이것과 다른 개념인 유전자 발현(gene expression)이다.
연구진은 세포 안의 RNA를 분석해 어떤 유전자가 어느 정도 활발히 읽히고 있는지를 살폈다.
DNA를 악보 전체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다.
돌연변이나 유전자 변형은 악보에 적힌 음표 자체가 바뀌는 일에 가깝다.
반면 유전자 발현은 같은 악보를 두고 지금 어떤 파트를 크게 연주하고, 어떤 파트는 쉬게 하는지처럼 세포의 연주 방식이 달라지는 일에 가깝다.
세포는 감염, 염증, 운동, 스트레스, 약물, 환경 노출처럼 여러 상황에 반응하면서 특정 유전자를 더 많이 또는 덜 읽는다.
따라서 유전자 발현이 달라졌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의 DNA 서열이 바뀌었거나, 자녀에게 전달될 돌연변이가 생겼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유전자 발현 변화가 아무 의미도 없다는 뜻은 아니다.
세포가 외부 자극에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서가 될 수 있고, 특정 변화가 오래 지속되거나 질병과 연결되는지는 후속 연구로 확인할 가치가 있다.
다만 RNA에서 발견된 변화와 DNA에 생긴 돌연변이를 같은 ‘유전자 변화’라는 말로 뭉뚱그리면, 연구가 실제로 보여준 것보다 훨씬 강한 결론처럼 들리게 된다.
이번 논란에서 가장 먼저 구분해야 할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연구는 유전자 발현의 차이를 봤지, 참가자들의 유전자 자체가 변형됐는지를 검사한 것은 아니다.
이 주장의 근거가 된 연구는 무엇인가?
이번 주장의 근거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은 2026년 6월 1일 국제 학술지 Frontiers in Oncology에 발표된 연구다.
연구진은 전자담배 사용자 35명, 일반 담배 흡연자 24명, 두 가지 모두 사용하지 않는 비사용자 24명을 모집했다.
참가자들의 뺨 안쪽 구강 상피세포를 채취한 뒤 RNA sequencing으로 유전자 발현 패턴을 분석했다.
RNA sequencing은 특정 시점에 세포 안에서 어떤 유전자가 얼마나 활발히 읽히고 있는지를 넓게 살펴보는 검사다.
즉 이 연구는 전자담배 사용자와 비사용자의 구강세포가 서로 다른 유전자 발현 양상을 보이는지를 확인한 연구다.
분석 결과 전자담배 사용자군에서는 비사용자군과 비교해 3,124개 유전자의 발현 차이가 확인됐다.
이 가운데 888개는 발현이 높아졌고, 2,236개는 낮아진 방향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 유전자 목록을 바탕으로 암과 관련된 신호전달 경로를 포함한 여러 생물학적 경로의 변화 가능성을 분석했다.
하지만 이것은 참가자에게 암이 생겼다는 뜻도, 이 유전자 변화가 미래에 암을 일으킨다는 뜻도 아니다.
구강세포에서 관찰된 분자 수준의 차이를 질병 발생이나 장기 건강 결과와 바로 연결할 수는 없다.
향료와 기기 종류도 별도로 분석했다는 점 때문에 이 연구가 더 큰 관심을 받았다.
연구진은 이미 확인된 3,124개 유전자 발현 변화 가운데, 향료 유형별 분석에서도 통계적으로 유의한 변화를 보인 유전자의 비율을 따로 살폈다.
여러 향료를 함께 사용한다고 답한 사용자군에서는 64.3%, 과일향 사용자군에서는 31%, 단맛향에서는 2.9%, 민트·멘톨향에서는 0.9%가 각각 해당했다.
여기서 여러 향료는 과일과 민트를 섞은 하나의 복합향 제품이라는 뜻이 아니라, 참가자가 여러 종류의 향료를 사용했다고 답한 범주에 가깝다.
따라서 이 숫자는 특정 향이 다른 향보다 몇 배 더 위험하다는 순위표가 아니라, 향료 범주에 따라 유전자 발현 변화 양상이 서로 달랐다는 분석 결과로 읽어야 한다.
그 연구가 실제로 보여준 것과 보여주지 않은 것
이 연구가 보여준 것은 전자담배 사용과 구강 상피세포의 유전자 발현 차이 사이에 연관성이 관찰됐다는 사실이다.
또 사용량뿐 아니라 기기 종류와 향료 사용 양상이 이런 차이에 함께 관련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시했다.
하지만 이 연구는 한 시점에서 사용자와 비사용자를 비교한 관찰연구다.
참가자에게 특정 전자담배나 향료를 사용하게 한 뒤, 시간에 따라 변화를 추적한 임상시험은 아니다.
따라서 전자담배가 이 유전자 발현 변화를 직접 만들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다.
전자담배를 사용하는 사람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처음부터 생활습관과 건강 상태, 과거 흡연력, 구강 환경, 다른 물질 노출이 다를 수 있다.
연구진은 나이와 성별을 보정해 분석했지만, 두 집단을 완전히 같은 조건으로 만들 수는 없다.
표본도 전자담배 사용자 35명, 일반 담배 흡연자 24명, 비사용자 24명으로 크지 않다.
향료와 기기 종류별로 다시 나누면 각 하위 집단의 인원은 더 줄어든다.
그래서 이번 결과는 무시할 필요 없는 생물학적 신호이지만, 과일향 전자담배가 유전자를 변형한다고 결론 내릴 단계의 증거는 아니다.
또 “3,124개 유전자가 달라졌다”는 숫자 자체가 얼마나 해로운지를 말해주지는 않는다.
유전자 발현은 외부 자극에 대한 세포의 정상적인 반응 과정에서도 폭넓게 바뀔 수 있다.
운동이나 감염, 수면 부족, 스트레스 같은 상황에서도 여러 유전자의 발현이 오르내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변화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 실제 조직 손상이나 질병 발생과 연결되는지, 사용을 중단하면 되돌아가는지다.
이번 연구는 그 질문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어도, 아직 답을 제공한 연구는 아니다.
왜 유독 과일향이 지목됐을까?
과일향이라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가면 다른 향료보다 유독 위험하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하지만 2026년 연구는 특정 과일향 성분 하나를 따로 분석해 위해성을 확정한 연구가 아니다.
연구진도 어떤 화학물질이 관찰된 유전자 발현 변화에 직접 관여했는지를 특정하지 못했다.
전자담배 액상은 향료 외에도 니코틴, propylene glycol, vegetable glycerin, 금속 성분 등 여러 요소가 얽인 복잡한 혼합물이다.
가열 온도와 기기 종류, 사용 횟수에 따라 실제 흡입되는 에어로졸 성분도 달라질 수 있다.
향료와 위해성의 관계가 연구마다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도 중요하다.
2023년 Nicotine & Tobacco Research에 발표된 연구는 전자담배 사용자와 일반 담배 흡연자, 비사용자를 합쳐 72명의 구강 상피세포 DNA 손상 정도를 분석했다.
이 연구에서는 단맛향 사용자군에서 DNA 손상 수치가 가장 높게 관찰됐고, 민트·멘톨향과 과일향 사용자군이 그 뒤를 이었다.
다만 향료별 하위 그룹의 인원이 작았고, 이 역시 한 시점의 관찰연구이므로 향료별 위험도를 확정하는 결과로 해석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2026년 연구는 유전자 발현을, 2023년 연구는 DNA 손상 지표를 측정했기 때문에 두 결과를 같은 기준에서 직접 비교할 수 없다.
이 차이를 구분하지 않으면 “한 연구에서는 과일향, 다른 연구에서는 단맛향이 가장 위험하다”는 식의 혼란이 생긴다.
실제로는 서로 다른 세포 변화와 서로 다른 분석 방법을 본 연구들이다.
현재까지 가장 정확한 표현은 특정 향료가 안전하다고 단정할 수도, 과일향 하나만 특별히 가장 위험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향료, 기기, 온도, 액상 조성, 사용량이 함께 영향을 줄 가능성을 봐야 한다.
전자담배의 위해성을 한 가지 맛 이름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EVALI는 일반 니코틴 전자담배와 같은 이야기일까?
전자담배의 위험을 이야기할 때 EVALI는 반드시 구분해서 설명해야 한다.
2019년 미국에서 크게 문제가 된 EVALI는 실제 입원과 사망으로 이어진 심각한 폐손상 증후군이었다.
당시 CDC 조사에서는 환자 대부분이 THC 함유 전자 흡입 제품을 사용했다고 답했고, 특히 비공식 경로 제품에 들어간 vitamin E acetate가 유행과 강하게 연관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례가 크게 줄어든 뒤 CDC는 2020년 2월부터 주 정부의 정례 사례 보고를 중단했다.
당시 CDC가 계속 확인하던 응급실 감시 자료는 EVALI 재유행을 시사하지 않았다.
따라서 EVALI를 현재 일반적인 니코틴 전자담배에서 계속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대표적 합병증처럼 쓰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렇다고 일반 니코틴 전자담배가 안전하다는 뜻도 아니다.
CDC는 전자담배를 포함한 어떤 담배 제품도 안전하지 않다고 밝히고 있으며, 전자담배 에어로졸에는 니코틴, 중금속, 휘발성유기화합물, 미세입자, 잠재적으로 유해한 화학물질이 들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대부분의 전자담배에 포함된 니코틴은 의존성을 일으키고, 청소년과 젊은 성인의 뇌 발달에 해로울 수 있다.
다만 EVALI, 유전자 발현 변화, DNA 손상 연구는 각각 원인과 측정 방법, 근거 수준이 다른 문제다.
서로 다른 위험을 하나의 자극적인 문장으로 묶기보다 각각의 근거를 따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관찰과 의미를 다시 구분하며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과일향 전자담배가 유전자를 변형시킬까.
현재 이 질문에 가장 정확한 답은, 구강세포에서 유전자 발현 변화가 관찰됐지만 DNA 염기서열 자체가 변형됐다는 증거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전자담배 사용과 세포의 분자적 반응 사이에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다만 참가자 35명, 대조군 각 24명 규모의 단일 시점 관찰연구였고, 향료별로 나누면 하위 집단 인원은 더 줄어든다는 점은 다시 짚어둘 필요가 있다.
특정 향료가 실제 질병을 일으키는지, 변화가 되돌릴 수 있는지, 장기적으로 암이나 다른 질환 위험을 얼마나 바꾸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전자담배를 둘러싼 연구는 공포만으로 읽어서도, 반대로 “유전자 변형은 아니니 괜찮다”고 가볍게 넘겨서도 안 된다.
전자담배에는 니코틴 의존성과 청소년 뇌 발달 문제, 흡입 에어로졸의 유해 성분처럼 이미 충분히 주의해야 할 이유가 있다.
반면 이번 연구 한 편만으로 과일향 전자담배가 유전자를 바꾸거나 자녀에게 전달될 돌연변이를 만든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무엇을 측정했고 무엇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는지를 구분하는 것이, 자극적인 제목보다 이 문제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방법이다.
전자담배 사용이 걱정되거나 끊는 데 도움이 필요하다면, 연구 제목 하나보다 담당 의료진이나 금연 지원 서비스와 상담하는 편이 훨씬 현실적인 출발점이다.
참고 자료: 2026년 전자담배 사용과 구강 상피 유전자 발현을 분석한 Frontiers in Oncology 연구 · 2023년 전자담배 사용량·기기·향료와 구강세포 DNA 손상을 분석한 Nicotine & Tobacco Research 연구 · CDC의 전자담배 건강 영향 안내 · CDC의 EVALI 유행 조사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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