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건 익숙해지는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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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어른이 되면 많은 것을 알게 될 줄 알았다.

20대 초반에 즐겨 어울리던 형님들이 보통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었다.
나도 그 나이가 되면 뭔가 중후해지고 과묵해지고 멋있어질 것만 같았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지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도 망설이지 않을 것 같았다.
갑자기 문제가 생겨도 당황하지 않고, 슬픈 일이 있어도 금방 마음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른은 단순히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상황에 대한 답까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어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사람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그 시절과 다름없이 노는 게 신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즐겁다.
지금도 모르는 것이 많고, 작은 선택 앞에서도 오래 고민한다.
이미 여러 번 겪은 일인데도 막상 다시 마주하면 마음이 흔들리고, 괜찮다고 생각했던 말 한마디가 예상보다 오래 남기도 한다.

다만 예전과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그런 순간들이 아주 낯설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기대했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가까웠던 사람과 조금씩 멀어지는 것.
열심히 했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가 따라오지는 않는다는 것.
몸과 마음이 언제나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는 않는다는 것.

처음 겪었을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졌던 일들도, 시간이 지나고 비슷한 일을 몇 번 더 겪고 나면 조금은 다른 모양으로 다가온다.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속상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저 이것도 언젠가는 지나간다는 사실을 조금 알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강해지는 일보다 익숙해지는 일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예상하지 못한 변화에 익숙해지고, 누군가와 헤어지는 일에 익숙해지고, 계획을 다시 세우는 일에 익숙해진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을 먼저 고르는 날이 많아지고, 내 기분이 좋지 않아도 평소처럼 하루를 살아내는 법을 배운다.

아침에는 일어나야 하고, 약속은 지켜야 하고, 처리해야 할 일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마음이 복잡한 날에도 밥을 먹고, 장을 보고, 이메일에 답하고, 밀린 빨래를 한다.
누군가를 걱정하면서도 출근하고,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도 고양이 밥을 챙기고, 내일을 위해 알람을 맞춘다.

예전에는 이런 모습이 무덤덤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느낀다.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하루를 계속 살아가는 것.
그것도 어쩌면 어른이 가진 힘일 수 있다.

물론 익숙해진다는 말에는 조금 쓸쓸한 면도 있다.

처음에는 특별했던 것들이 점점 평범해진다.
처음 가본 도시의 풍경도, 기다리던 물건을 손에 넣었을 때의 설렘도, 누군가와 처음 가까워지던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일상의 일부가 된다.
한때는 오래 기억할 것 같았던 순간도 조금씩 흐려진다.

좋은 것에 익숙해지는 일은 편안하지만, 때로는 아쉽다.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마시는 커피.
집에 돌아왔을 때 켜져 있는 불빛.
별다른 용건 없이 걸려오는 가족이나 친구의 전화.
평소에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던 건강한 하루.

그런 것들은 사라지거나 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선명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것이 단순히 모든 것에 익숙해지는 일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픔에는 조금 익숙해지더라도, 기쁨에는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것.
힘든 일이 지나갈 수 있다는 사실은 기억하면서도, 좋은 일이 찾아왔을 때는 여전히 기뻐할 수 있는 것.
누군가의 친절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평범한 하루에도 가끔은 감사할 수 있는 것.
많이 경험했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이미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처음 보는 것 앞에서 여전히 궁금해하고,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면 아직도 마음이 움직이는 것.

그런 어른이라면 조금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서툴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알지 못하고, 어떤 선택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는 순간도 많다.
괜찮지 않은 날에는 괜찮은 척하고, 잘하고 있는지 모르면서도 일단 다음 하루로 넘어간다.
아마 앞으로도 완전히 익숙해지지 못하는 일들이 계속 생길 것이다.

하지만 예전보다 조금은 알 것 같다.
어른은 모든 답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두렵지 않은 사람도 아니고, 상처받지 않는 사람도 아니다.

두려워하면서도 해야 할 일을 하고, 상처를 안고도 다시 일상을 시작하는 사람에 가깝다.
낯선 일을 여러 번 지나오면서도, 세상의 모든 것이 익숙해졌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익숙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다만 무엇에는 익숙해지고, 무엇에는 끝까지 익숙해지지 않을 것인지 스스로 선택해가는 일.

나는 아픔이 언젠가는 지나간다는 사실에는 조금 더 익숙해지고 싶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 앞에서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만큼은, 오래도록 익숙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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