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마취를 하면 정말 ‘의식이 꺼지는’ 걸까?: 마취 심도와 수술 중 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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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았다 뜬 것 같은데 벌써 끝났네요.”
전신마취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마취 직전까지 기억나는데 다음 장면이 회복실이라면, 그 사이 몇 시간이 통째로 사라진 것처럼 느껴질 만하다.
기억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과, 그동안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은 것은 같은 말일까.

전신마취는 실제로 약물로 의식 소실을 유도하는 의료행위다.
단순히 기억만 지워놓고 수술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환자가 나중에 떠올리는 기억만으로 수술 중의 뇌 상태를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마취과 의료진이 약물 투여와 여러 신체 신호를 계속 확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글에서는 ‘잠깐 잤다 깬 것 같다’는 익숙한 설명에서 출발해, 마취의 깊이와 드물게 보고되는 수술 중 각성을 살펴보려 한다.

‘수면마취’와 전신마취는 같은 걸까?

마취는 여러가지 다른 방법이 들어 있다.
치과에서 잇몸에 주사를 맞는 것, 하체 감각을 차단한 채 수술받는 것, 내시경을 받으며 졸린 상태가 되는 것, 전신마취를 받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몸의 어느 부위에 작용하는지와 의식 수준을 얼마나 낮추는지가 다르다.

종류주된 작용의식 상태사용 예
국소마취작은 부위의 감각 차단보통 깨어 있음상처 봉합, 치과 치료
부위마취특정 신경이나 척추 주변에 약물을 투여해 넓은 부위의 감각 차단깨어 있을 수 있으며 진정을 병행하기도 함팔·다리 수술, 하복부 수술
진정불안과 각성 수준을 낮춤가벼운 졸림부터 깊은 진정까지 다양함내시경, 각종 시술
전신마취약물로 의식 소실을 유도하고 수술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통증 자극에도 깨울 수 없는 상태다양한 수술

미국마취안전재단(APSF)과 미국마취과학회(ASA)는 진정을 깊이에 따라 구분한다.
가벼운 진정에서는 말에 정상적으로 반응하고, 중등도 진정에서는 말이나 가벼운 접촉에 목적 있는 반응을 보인다.
깊은 진정에서는 쉽게 깨지 않지만 반복하거나 통증을 주는 자극에 반응할 수 있다.
전신마취에서는 통증 자극에도 깨울 수 없다.
우리가 흔히 쓰는 ‘수면마취’라는 표현만으로는 이 가운데 어느 단계인지 알기 어렵다.
시술에 따라 진정의 깊이가 다르고, 같은 약도 용량과 환자의 반응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진정 상태에서는 시술 중 말을 듣거나 일부를 기억할 수도 있다.
그 경험을 전신마취 중 각성과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면 혼란이 생기므로, 시술 전에 어떤 상태를 목표로 하는지 설명을 듣는 편이 좋다.
마취 중 기도 보호 반사가 약해지는 문제와 금식의 이유는 앞서 쓴 수술 전 금식 글에서 다뤘다.

의식, 기억, 통증 반응, 움직임은 따로 봐야 한다

전신마취에서 필요한 것은 의식 소실 하나만이 아니다.
수술 중 기억이 남지 않도록 하고, 통증 자극에 대한 반응을 줄이며, 수술에 필요한 움직임 억제와 생리적 안정도 유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마취제와 진통제 등을 조합하고, 필요하면 근이완제도 사용한다.
각 약이 맡는 역할이 달라서 한 가지 효과만 보고 마취가 충분하다고 판단할 수 없다.
2010년 Brown, Lydic, Schiff가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한 종설도 전신마취를 의식 소실, 기억 소실, 진통, 움직임 억제 등이 함께 나타나는 가역적인 약물 유도 상태로 설명했다.

특히 근이완제는 의식을 없애거나 통증을 줄이는 약이 아니다.
근육이 움직이지 않게 하는 약이다.
따라서 환자가 가만히 누워 있다는 사실만으로 의식까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나는 이 구분이 전신마취를 이해하는 데 가장 먼저 필요한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겉으로 보이는 움직임과 뇌의 상태를 따로 봐야 한다는 점이 생각보다 쉽게 빠지기 때문이다.

마취는 깊은 잠과 다르다

잠든 사람은 큰 소리나 통증에 깰 수 있다.
수면 중에도 렘수면과 비렘수면을 오가며 뇌 활동이 달라진다.
전신마취는 약물로 의식 소실을 유도하고 유지하는 상태여서 자연 수면과는 다르다.
깨어날 때도 마취약을 줄이거나 중단한 뒤 몸속 약물 농도가 낮아지는 과정 등이 영향을 준다.
앞의 NEJM 종설은 이런 차이를 설명하며 전신마취를 ‘약물로 유도한 가역적 혼수’라고 표현했다.
혼수라는 말이 무섭게 들릴 수 있지만, 뇌 손상으로 발생한 혼수와 원인이나 경과가 같다는 의미는 아니다.
강한 자극에도 적절히 반응하지 않는 상태를 약물로 만들고, 이후 회복할 수 있다는 특징을 설명한 것이다.

마취 중에도 뇌의 전기 활동은 이어지며 그 양상이 달라진다.
‘뇌 전체의 전원이 꺼진다’고 생각하면 이 부분을 놓치게 된다.
마취의 깊이를 조명 밝기에 빗대는 설명도 있지만, 이 비유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실제 상태는 약물 종류에 따라 다르고, 의식과 기억, 움직임이 항상 나란히 변하는 것도 아니다.
밝기를 나타내는 손잡이 하나로 뇌 전체를 조절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기능에 영향을 주는 약들을 조합한다고 이해하는 편이 낫다.

수술 중 각성은 무엇을 말할까?

전신마취 중 각성은 의도하지 않게 의식이 남거나 돌아와, 그때의 일을 나중에 기억하는 경우를 말한다.
영어로는 accidental awareness during general anaesthesia, 줄여서 AAGA라고 부른다.
누군가 말하는 소리나 압박감을 기억하는 경우부터, 움직일 수 없어 두려웠거나 통증을 느꼈다는 경우까지 경험은 다양하다.
반드시 수술 내내 깨어 있었다는 뜻은 아니며, 마취를 시작하거나 마무리하는 시점에도 보고된다.

2014년 발표된 영국·아일랜드의 NAP5 조사에서는 환자에게서 보고된 전신마취 중 각성의 빈도를 약 19,000건당 1건으로 추정했다.
여기서 ‘보고된’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모든 환자에게 수술 뒤 정해진 질문을 반복한 방식과, 환자가 의료진에게 알린 경험을 모으는 방식은 잡아내는 사례가 다르다.
NAP5 연구진도 구조화된 면담을 사용한 연구에서 더 높은 빈도가 나온다는 점을 논의했다.
따라서 19,000건당 1건을 모든 병원과 모든 수술에 공통인 확률로 읽어서는 안 된다.

드문 일이라고 해서 겪은 사람에게도 작은 일은 아니다.
NAP5의 환자 경험 분석에서는 75%가 경험한 시간을 5분 미만으로 보고했지만, 51%는 당시 괴로움을 겪었고 41%는 장기적인 악영향을 보고했다.
특히 움직일 수 없었다는 경험은 심리적 고통과 관련이 컸다.
이 비율은 각성을 보고한 사례들에서 나온 값이며, 전신마취를 받은 사람 전체의 비율은 아니다.
연구진은 분석한 사례의 약 4분의 3을 예방 가능했다고 판단했고, 약물과 환자 요인, 교육·훈련 등 여러 문제가 관여했다고 설명했다.

모니터에 뜨는 숫자가 의식을 보여줄까?

그렇다면 수술실에서는 마취가 충분한지 어떻게 판단할까.
혈압과 심박수, 호흡 상태를 보면서 약물이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 확인한다.
흡입마취제를 쓰면 내쉬는 숨에 포함된 마취제 농도를 측정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 뇌파 기반 모니터도 사용한다.
어느 한 신호만으로 판단하기보다 마취 방법과 환자 상태에 맞춰 해석한다.
BIS는 뇌파 신호를 가공해 숫자로 보여주는 지표다.
이마에 센서를 붙이고 수치가 표시되니 의식의 밝기를 재는 계기판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숫자가 직접 나타내는 것은 의식 자체가 아니라 뇌파를 분석한 결과다.

이 차이를 살펴볼 만한 연구가 2011년 발표된 BAG-RECALL 시험이다.
연구진은 각성 위험이 높은 환자 6,041명을 무작위로 나눠, BIS 경보를 활용한 관리와 호기 말 마취가스 농도 경보를 활용한 관리를 비교했다.
두 방법 모두 교육과 체크리스트를 포함한 관리 절차였다.
수술 후 면담을 받은 환자 가운데 확실한 각성으로 판정된 사례는 BIS군 2,861명 중 7명(0.24%), 마취가스 농도군 2,852명 중 2명(0.07%)이었다.
가능성 있는 사례까지 포함하면 각각 19명(0.66%)과 8명(0.28%)이었다.
연구에서 BIS 관리 방식이 더 우수하다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이 시험을 근거로 BIS가 모든 상황에서 필요 없다거나, 마취가스 농도 측정이 모든 마취 방법을 대신한다고 결론 내릴 수도 없다.
흡입마취제를 사용하는 고위험 환자에서 두 관리 절차를 비교한 결과라는 범위를 지켜야 한다.
이 시험에는 모니터 없이 관리한 비교군이 없었으므로, 두 방법이 각각 각성을 얼마나 줄였는지까지 계산할 수는 없다.
확실한 각성은 두 군을 합쳐 9명이었다.
장비 이름 하나로 안전을 보장하기보다는, 장비가 주는 정보를 약물 투여와 환자 상태에 연결해 판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기억이 없다는 것과 경험이 없었다는 것

처음의 “눈을 감았다 뜬 것 같다”는 말로 돌아가 보자.
이 말에서 직접 알 수 있는 것은 환자가 그 사이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 시간 내내 뇌가 어떤 상태였는지까지 기억 하나로 증명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기억하지 못하는 동안 사실은 계속 깨어 있었다고 추정할 근거도 없다.
전신마취는 의식 소실을 유도하는 것이고, 수술 후 기억만으로 그 상태를 판단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 신호를 감시한다.

연구에서 말하는 ‘수술 중 각성’도 어떤 기준으로 조사했는지 살펴야 한다.
깨어난 뒤 기억을 확인하는 연구는 회상 가능한 경험을 포착한다.
회상되지 않는 경험까지 같은 방식으로 측정할 수는 없으므로, 각성의 보고 빈도를 마취 중 가능한 모든 의식 경험의 빈도와 같다고 볼 수는 없다.
의식과 기억을 구분하는 것은 이 한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다.

수술을 앞두고 있다면

이전에 마취 중 소리나 통증을 기억했거나, 움직일 수 없어 두려웠던 경험이 있다면 마취 전 면담에서 말해야 한다.
평소 복용하는 약, 수면제·진정제와 진통제 사용, 음주 여부도 정확히 알려야 한다.
약은 임의로 끊거나 늘리지 말고 수술 전 지시를 따른다.
수술 후 각성이 의심되는 기억이 남았다면 혼자 판단하거나 참고 넘기지 말고 마취를 담당한 의료진에게 알려야 한다.
NAP5 연구진도 내용이 짧거나 뒤늦게 보고된 경험이라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평가와 지원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글에서 다룬 연구에도 한계가 있다.
뇌와 수면에 관한 설명은 2010년 종설을 바탕으로 한 개관이며, 의식의 모든 기전이 밝혀졌다는 뜻은 아니다.
NAP5는 환자 보고에 기반한 조사이고, BAG-RECALL은 고위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시험이어서 두 숫자를 나란히 놓고 일반 환자의 위험을 계산할 수 없다.
조사 방법과 대상, 각성의 판정 기준이 서로 다르다.

나는 이 자료를 읽으며 ‘마취하면 잠든다’는 설명 뒤에 생략된 일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에게는 중간이 비어 있는 몇 시간이지만, 의료진에게는 약물 효과와 호흡, 순환, 움직임과 뇌 상태를 계속 살피는 시간이다.

이 글은 2026년 10월 15일에 확인한 자료를 기준으로 작성했다.

참고 자료: APSF — 마취의 종류 · ASA — 진정 깊이와 전신마취의 정의 · Brown·Lydic·Schiff — 전신마취, 수면과 혼수(2010, MIT 공개 저자 원고) · NAP5 — 수술 중 각성의 빈도와 위험요인(2014) · NAP5 — 환자 경험과 심리적 영향(2014) · BAG-RECALL — 고위험 환자의 수술 중 각성 예방 연구(2011)

의학 정보 안내
이 글은 건강 및 의학 관련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일반적인 정보이며, 개인의 상태에 대한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관련 증상이 있거나 건강에 대한 우려가 있다면 의료진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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