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도 커피는 포기 못하지: 캠핑 vs 하이킹 커피 장비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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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PT 세션 중에 선생님과 커피 이야기가 나왔다.
하이킹을 종종 다니시는데, 트레일 중간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 좋을 것 같다고 하시며 휴대용 커피 머신과 그라인더를 추천해달라고 하셨다.
나는 평소 캠핑 갈 때 쓰는 조합을 그대로 말해줬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OutIn Nano, 그라인더는 Timemore x Millab E01.
둘 다 써본 입장에서 맛은 확실히 보장할 수 있는 조합이었다.

그런데 말을 하다 보니 스스로도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이 두 개를 다 배낭에 넣고 몇 시간을 걷는다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점이었다.
OutIn 머신만 해도 670g이고, 그라인더는 본체와 스탠드를 합치면 1.3kg 가까이 나간다.
기본적으로 물, 간식, 구급용품까지 챙겨야 하는 하이킹 배낭에 커피 장비만 2kg 가까이 더하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다.
캠핑처럼 차로 짐을 옮기고 텐트 옆에 테이블을 펴는 상황과, 온전히 두 다리로 짐을 짊어지고 걷는 상황은 같은 “야외 커피”라도 장비를 고르는 기준 자체가 달라야 한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그래서 이 글은 PT 선생님께 제대로 된 답을 해드리기 위해 정리한 것이기도 하고, 비슷하게 캠핑용과 하이킹용 커피 장비를 따로 찾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소개하는 제품 가운데 Wacaco Nanopresso를 제외하면 대부분 직접 써 본 제품들이다. Wacaco는 실사용 경험이 없어 제조사 사양과 여러 사용 후기를 비교해 캠핑용과 하이킹용으로 나눠 정리했다.
다만 휴대용 장비는 집이나 카페의 장비처럼 온도, 분쇄, 추출 변수를 정교하게 통제하기는 어렵다.
휴대성과 편의성을 얻는 대신 어느 정도의 타협이 생기는 것은 맞고, 이 글에서 소개하는 제품들도 그 전제 위에서 “이 정도면 야외에서 만족스럽다”는 기준으로 고른 것들이다.

추출기: 캠핑은 편의성, 하이킹은 무게가 기준이다

추출기를 고를 때 가장 먼저 볼 것은 전원 유무 자체보다 장비를 어떻게 옮길 수 있느냐다.
차로 캠프사이트까지 이동해 짐을 내려놓는 캠핑이라면 배터리 내장 전동 머신의 무게와 부피를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다.
반면 몇 시간을 배낭에 짊어지고 걸어야 하는 하이킹에서는 추출기 하나의 무게뿐 아니라 물을 데울 도구, 연료, 원두와 세척에 필요한 물까지 함께 계산해야 한다.

내가 실제로 쓰는 OutIn Nano가 딱 이 용도다.
670g에 20바 압력을 내는 소형 전동 에스프레소 머신인데, USB-C로 충전하고 자체 가열 기능이 달려 있어서 상온수를 넣어도 약 3분 남짓이면 알아서 데워준다.
사기 전에 여러 리뷰를 찾아봤을 때도 케틀이나 스토브, 콘센트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뽑을 수 있다는 게 제일 많이 나오는 칭찬이었는데, 실제로 써보니 정말 그 점 하나는 확실했다.
다만 써보면서 알게 된 건, 상온수를 넣고 매번 자체 가열까지 시키면 배터리가 금방 닳아서 한 번 충전에 대여섯 잔 뽑으면 끝이라는 거였다.
그리고 캡슐 말고 분쇄 원두를 쓸 때는 기본 바스켓이 작아서 원두를 옮기다 흘리기도 하고, 다 쓰고 난 축축한 찌꺼기를 텐트 옆에서 깔끔하게 털어내기도 은근히 귀찮았다.
이 부분은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용자들 후기에서도 자주 나오는 불만이라, 나처럼 따로 파는 여분 바스켓을 사서 돌려쓰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 같다.
정리하면 버튼 하나로 가열부터 추출까지 알아서 되니까 캠프사이트 아침마다 크게 손이 안 가는 건 확실히 좋았고, 대신 배터리 관리랑 원두 다루는 데 은근히 신경 쓸 일이 있다는 것, 가격이 150달러 선이라 만만치 않다는 것, 집에서 쓰는 반자동 머신에 비하면 맛과 안정성은 확실히 한 단계 아래라는 걸 감안하고 쓰면 좋을 것 같다.

반면 하이킹처럼 순수하게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무게가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
이럴 때 챙겨본 게 AeroPress Go다.
여행용 머그에 본체, 플런저, 필터까지 다 넣어도 323g밖에 안 되고, 배터리 없이 손으로 눌러서 내리는 방식이라 고장 걱정도 딱히 없다.
OutIn을 구입하기 전까지 캠핑을 다닐 때마다 들고 다녔던 녀석이고, 써보니 확실히 번거로움 없이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맛이 나왔고, 다 쓰고 나서 씻는 것도 간단해서 그 점은 마음에 들었다.
아쉬운 건 같이 들어있는 플라스틱 머그가 딱 그 정도 느낌이라 따로 쓰던 티타늄 머그를 챙기게 됐다는 것, 그리고 한 번에 237ml 정도라 둘이 나눠 마시기엔 좀 빠듯하다는 것 정도였다.

비슷한 무게대에서 에스프레소 쪽 느낌을 더 원한다면 Wacaco Nanopresso도 있다.
이건 내가 직접 써본 건 아니고 찾아본 리뷰 기준으로 얘기하는 건데, 336g의 본체에서 손 펌프로 최대 18바 압력을 만들어 에스프레소에 가까운 진한 샷과 크레마를 낼 수 있다는 평이 많다.
다만 물을 스스로 데우는 제품은 아니어서, 하이킹에서는 끓인 물을 담은 보온병이나 작은 스토브·코펠을 별도로 준비해야 한다.
Nanopresso 자체 무게는 336g으로 AeroPress Go와 큰 차이가 없지만, 스스로 물을 데우지는 못한다는 점이 선택의 기준이 된다.
당일 하이킹에서 이미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담아가거나, 코펠과 스토브를 챙길 예정이라면 진한 샷을 즐길 수 있는 좋은 선택이다.
반대로 커피를 위해 추가 장비를 늘리고 싶지 않다면 AeroPress Go가 훨씬 단순하다.
또 AeroPress처럼 퍽을 밀어내고 끝나는 방식은 아니어서, 필터 바스켓과 컵 등 여러 부품을 헹구고 말리는 과정은 조금 더 필요하다.
그래서 트레일에서 에스프레소에 가까운 맛이 꼭 필요하다면 Nanopresso, 무게와 뒷정리를 최대한 줄이고 싶다면 AeroPress Go를 고르는 편이 맞다.

차로 이동하는 캠핑인데 화력이 충분하다면 모카포트도 나쁘지 않다.
예전에 캠핑장에서 가스버너 위에 올려 써본 적이 있는데, 배터리 없이도 진하게 잘 나와서 아침에 정신 차리기엔 딱이었다. 다만 금속 재질이라 다른 옵션들보다 확실히 무겁고 부피도 있어서, 배낭을 메고 걷는 하이킹에는 안 어울린다.

그라인더: 캠핑은 전동, 하이킹은 무게가 곧 정답이다

그라인더도 마찬가지로 전동이냐 수동이냐를 먼저 정하고 나면 선택이 쉬워진다.
캠핑에서는 전동 그라인더를 써도 부담이 적다.

내가 쓰는 Timemore x Millab E01이 좋은 예다.
본체 990g에 스탠드까지 더하면 1.3kg 가까이 나가서 가벼운 제품은 절대 아니지만, 배터리 하나로 드립 기준 100잔 넘게 갈리니까 한 달 넘게 충전할 생각을 안 해도 될 정도다.
스탠드에 자석식 원두 받침, 분사병까지 같이 딸려 와서 처음 열었을 때 구성이 꽤 알차다는 인상을 받았다.
버튼만 누르면 알아서 갈아주고 소음도 크지 않아서, 텐트 옆에서 이른 아침에 써도 옆 사이트에 민폐가 될 일은 없었다.
다만 쓰다 보니 무게와 부피 때문에 스탠드까지 챙기면 여행용으로는 확실히 부담스럽고, 호퍼에 원두가 남아서 매번 살짝 흔들거나 두드려줘야 하는 것도 은근히 손이 갔다.
제조사 스펙엔 에스프레소용으로도 쓸 수 있다고 나오는데, 실제로 갈아보면 에스프레소만큼 곱게 가는 데는 살짝 아쉽고 드립용으로 쓸 때가 더 만족스러웠다.
가격은 260달러 선이라 수동 그라인더 두세 개를 살 수 있는 금액이긴 하다.

하이킹처럼 매 그램이 아쉬운 상황이라면 답은 수동 그라인더 쪽으로 넘어간다.
1Zpresso Q2는 465g에 접이식 크랭크 핸들이 달려 있어서 배낭 옆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편했고, 에어로프레스 본체 안에 쏙 들어갈 만큼 크기도 아담했다.
실제로 갈아보면 30초 안팎이면 끝날 정도로 빠르고, 드립이나 에어로프레스용으로는 분쇄 품질도 꽤 만족스러웠다.
다만 처음 샀을 땐 미세 입자가 좀 많이 섞여 나와서 한두 달 정도 쓰면서 길이 드는 느낌이었고, 에스프레소 굵기로 갈려면 시간이 꽤 걸려서 그 용도로는 잘 안 쓰게 됐다.
핸드드립이나 에어로프레스 위주로 하이킹 커피를 즐기는 편이라면 잘 맞는 그라인더다.

좀 더 가벼운 쪽을 원한다면 Porlex Mini II도 써봤는데 괜찮은 대안이었다.
스테인리스 스틸이라 내구성이 좋고, 전작 모델과 달리 크랭크 돌릴 때 손잡이가 헐거워지거나 빠지는 느낌이 없어서 안정적이었다.
분쇄도 조절도 딸깍딸깍 소리가 날 만큼 세밀해서, 에어로프레스처럼 곱게 갈 때 특히 잘 맞았다.
대신 전작보다 조금 더 무거워졌고, 프렌치프레스처럼 굵게 갈 때는 미세 입자가 섞여 나오는 느낌이 있었다.

위에서 소개한 두 제품 모두 저가형 플라스틱 그라인더들보다는 가격대가 있는 편이라, 예산을 더 아끼고 싶어서 Timemore Chestnut C2도 한동안 써본 적이 있다.
가성비는 확실히 좋았고 20g 정도는 40~50초 정도면 갈릴 만큼 분쇄 속도도 빨랐다.
다만 용량이 25g으로 작은 편이고, 덮개나 크랭크 같은 부품이 플라스틱이라 앞선 두 제품보다는 내구성이 떨어지는 느낌이었고, 분쇄도 조절 다이얼에 눈금이 없어서 원하는 굵기를 다시 맞추기가 매번 좀 번거로웠다.

정리하면 캠핑에서는 편의성을 우선해 전동을, 하이킹에서는 무게를 우선해 수동을 고르는 게 맞고, 굳이 전동이냐 수동이냐를 가리지 않는다면 결국 배낭에 얼마나 더 얹을 수 있느냐가 마지막 기준이 된다.

물을 끓이고 따르는 도구

추출기와 그라인더만큼 자주 언급되진 않지만, 물을 끓이고 정량으로 따르는 도구도 커피 맛에 꽤 큰 영향을 준다.

캠핑에서는 구스넥 티타늄 케틀 하나를 따로 챙기는 편이다.
지금 쓰는 건 950ml 용량의 SilverAnt 티타늄 푸어오버 케틀인데, 가볍고 부식 걱정도 없는 티타늄 재질이면서 주둥이가 가늘어서 물줄기를 얇고 일정하게 조절하기 좋았다.
핸드드립할 때 원두가 고르게 젖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다만 이 제품 자체에 온도계가 내장된 것은 아니라서, 92~96도처럼 온도를 정확히 맞추고 싶다면 별도의 클립형 온도계나 온도 조절 케틀을 함께 써야 한다.
스테인리스 제품보다 가격은 있는 편이지만, 950mL 모델이 230g이라 가벼우면서도 혼자 혹은 둘이 커피를 마시기에 충분한 용량이라는 점은 마음에 들었다.

반면 하이킹에서는 따로 케틀을 챙기기보다 이미 배낭에 있는 티타늄 코펠이나 냄비를 그대로 쓰는 편이 합리적이다.
어차피 물은 끓여야 하니 코펠 하나로 끓이기와 따르기를 겸하면 짐을 하나 줄일 수 있는데, 다만 입구가 넓은 편이라 물줄기 조절이 구스넥 케틀만큼 섬세하진 않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짐을 최소화하고 싶어서 아예 케틀을 안 챙기고 싶다면, OutIn Nano처럼 자체 가열이 되는 머신을 하이킹에 그대로 들고 가는 것도 방법이긴 하다.
상온수를 그대로 부어도 기계가 알아서 데워주니 따로 물을 끓일 도구가 없어도 된다.
다만 이 경우 배터리 소모가 커서 하루에 한두 잔 이상은 부담스럽고, 머신 자체 무게도 670g이라 AeroPress Go나 Nanopresso보다는 훨씬 무겁다.
그러니 짧은 당일치기에 한두 잔이면 충분하고 케틀까지 챙길 여유가 없다면 자체 가열 머신 하나로 끝내는 것도 괜찮지만, 여러 날 걷거나 여러 잔을 마시고 싶다면 가벼운 케틀이나 코펠에 물을 미리 끓여서 가벼운 추출기와 조합하는 쪽이 배터리 걱정 없이 더 낫다.

하이킹에서도 핸드드립의 물줄기 조절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면, 더 작은 초경량 구스넥 티타늄 케틀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다만 코펠 하나로 해결하는 조합보다 비용과 짐이 늘어나는 만큼, 당일 하이킹보다는 커피 추출 자체를 중요한 즐거움으로 여기는 경우에 더 잘 맞는다.

그 외에 챙기면 좋은 소품들

큰 장비 세 가지 말고도 있으면 확실히 편한 소품들이 있다.
접이식 플라스틱이나 실리콘 드리퍼는 부피가 거의 없다시피 하면서도 AeroPress 없이 그냥 원두 가루로 필터 커피를 내리고 싶을 때 유용하다.
쓰레기를 줄이고 싶다면 재사용 가능한 스테인리스 필터도 좋은 선택이다.
다만 종이 필터는 거의 무게가 없고 사용 뒤 정리도 쉬운 반면, 스테인리스 필터는 세척할 물이 더 필요하고 미세한 커피 입자가 조금 더 느껴질 수 있다.

원두는 미리 그날 마실 양만큼 소분해서 밀폐 파우치에 담아가는 게 좋은데, 그라인더 호퍼 용량이 크지 않은 만큼 한 번에 갈 양만 정확히 담아가면 짐도 줄고 원두 산패도 최소화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중 스테인리스 보온 텀블러 하나는 캠핑이든 하이킹이든 공통으로 유용한데, 갓 내린 커피의 온도를 오래 유지해주는 것뿐 아니라 추출한 머신이나 케틀을 텐트나 배낭에 다시 넣기 전에 잠깐 커피를 옮겨 담아둘 그릇으로도 쓸 수 있어서 하나쯤 챙겨두면 여러모로 편하다.

정리하자면

PT 선생님처럼 트레일 한가운데서 직접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리는 과정 자체의 감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미리 갈아 가는 것보다 작은 수동 그라인더를 챙기는 편이 더 잘 맞을 수 있다.
다만 무게와 짐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우선이라면, 원두를 한 잔 분량씩 미리 갈아 밀폐 파우치에 소분해 가는 방법도 현실적인 선택이다.
AeroPress Go에 종이 필터와 미리 분쇄한 원두만 더하면 장비 부담을 가장 가볍게 줄일 수 있고, 갓 간 원두의 향과 추출 과정까지 즐기고 싶을 때는 1Zpresso Q2나 Porlex Mini II를 더하면 된다.

PT 선생님이 이 글을 먼저 보실지, 다음 주에 내가 먼저 말씀드릴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는 어떤 조합을 권할지 조금 더 명확해졌다.

지금 정리한 걸 보면, 차로 캠프사이트까지 짐을 옮길 수 있는 캠핑이라면 내가 쓰는 OutIn과 Timemore x Millab 조합을 그대로 써도 되지만, 순수하게 걸어야 하는 하이킹이라면 AeroPress Go나 Nanopresso에 1Zpresso Q2나 Porlex Mini II를 짝지어 커피 장비 자체의 무게를 1kg 안팎으로 줄이는 게 현실적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끓인 물을 담은 보온병이나 코펠, 스토브까지 챙긴다면 전체 무게는 더 늘어나지만, 적어도 추출기와 그라인더에서만큼은 캠핑용 조합보다 훨씬 가벼워진다.
두 조합 다 집에서 마시는 커피만큼의 완성도를 기대하긴 어렵지만, 트레일 한가운데서 마시는 한 잔은 어차피 그 맛만으로 마시는 게 아니라 분위기가 그 맛을 더 깊게 해주지 않을까 싶다.

결국 어떤 조합을 고르든 기준은 하나다.
어디까지 짐을 들고 갈 수 있는 상황인지를 먼저 정하고, 짊어질 수 있는 무게 안에서 맛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장비를 고르는 것.
이 글이 PT 선생님한테 드릴 답이 되기도 하고, 나처럼 캠핑용과 하이킹용을 따로 챙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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