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은 보이지 않지만,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어떤 향은 사람을 떠올리게 하고,
어떤 향은 장소를 떠올리게 하고,
어떤 향은 오래 잊고 있던 시간까지 끌고 올라온다.
길을 걷다가 스쳐 지나간 누군가의 향수.
차 문을 열었을 때 은은하게 남아 있는 방향제의 냄새.
방 안에 천천히 퍼지는 디퓨저와 캔들의 향.
비 온 뒤 공기, 오래된 나무, 새 책, 세탁물, 커피잔 옆에 남은 잔향까지.
향은 분명히 손에 잡히지 않는데, 기억에는 꽤 선명하게 남는다.
처음에는 나도 그냥 “좋은 냄새”와 “별로인 냄새” 정도로만 향을 구분했다.
상쾌한 향, 달콤한 향, 무거운 향, 머리 아픈 향.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마 중학교 3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항상 같이 다니던 기덕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비가 오던 날, 둘 다 우산이 없어서 집에 어떻게 가야 하나 걱정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내가 문득 말했다.
비가 오기 전에는 항상 무언가 설명하기 어려운 “비 냄새”가 난다고.
약간의 녹슨 쇠 냄새, 지하실에서 맡을 수 있을 법한 희미한 곰팡이 냄새, 젖은 흙과 젖은 신문지에서 나는 냄새.
그 모든 것이 아주 약하게 섞인 듯한 냄새가 있다고.
기덕이도 바로 맞장구를 쳤다.
자기도 뭔가 그런 냄새를 맡은 적이 있는데, 내 설명을 듣고 보니 정말 찰떡같이 맞아떨어진다고 했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향이라는 것에 조금씩 궁금증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향을 조금 더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그것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세계라는 걸 알게 됐다.
첫 향은 밝고 가볍게 올라오지만,
시간이 지나면 전혀 다른 중간 향이 나타나고,
마지막에는 피부나 공간에 조용히 남는 잔향이 전체 인상을 결정한다.
같은 향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고,
같은 향수도 날씨와 습도, 계절, 공간에 따라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종이에 뿌렸을 때와 피부에 올렸을 때가 다르고,
처음 맡았을 때와 몇 시간 뒤 기억나는 향이 또 다르다.
취미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한때는 꽤 진지하게 향을 공부했다.
상업용 대량 생산을 다루는 큰 규모의 조향 과정과는 다르지만, artisan perfumery 쪽으로 certified perfumer 과정까지 마치면서 향료와 조향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그 과정을 지나면서 알게 된 건, 향은 단순히 좋은 냄새를 섞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향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균형이 필요하고,
농도가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어떤 느낌을 남기고 싶은가”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
어떤 향은 처음에는 강하지만 금방 사라지고,
어떤 향은 조용히 시작해서 오래 남는다.
어떤 향은 깨끗하고 단정하고,
어떤 향은 어둡고 묵직하고,
어떤 향은 설명하기 어려운데도 계속 다시 맡아보고 싶어진다.
In The Air는 그런 향에 대한 기록이다.
향수만 이야기하는 공간은 아니다.
차 안에 두는 방향제, 방 안에 놓는 디퓨저, 캔들, 룸스프레이, 비누, 세제, 나무, 가죽, 커피, 술잔 위로 올라오는 향까지.
내 주변 공기 속에 잠깐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것들을 하나씩 붙잡아보는 공간이다.
전문적인 리뷰만 쓰려는 것은 아니다.
노트가 어떻고, 어코드가 어떻고, 어떤 향료가 쓰였는지를 분석하는 글도 가끔은 나오겠지만, 결국 중요한 건 내가 실제로 어떻게 느꼈는지일 때가 많다.
이 향이 어떤 공간에 어울리는지,
어떤 계절에 더 잘 맞는지,
처음에는 좋았지만 왜 금방 질렸는지,
반대로 별 기대 없었는데 왜 자꾸 손이 가는지.
향은 취향이 많이 갈린다.
누군가에게는 고급스럽게 느껴지는 향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포근한 향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너무 달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서 향에 대한 이야기는 정답보다 기록에 가깝다.
내가 맡았던 향,
내가 좋아했던 향,
시간이 지나면서 다르게 느껴진 향,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맡았을 때 그때의 기억을 함께 데려올 향들.
이곳에는 그런 것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공기 중에 잠깐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것들.
하지만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는 것들.
In The Air는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취향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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