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 안에 담기는 취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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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이상하게 맛보다 기억으로 남을 때가 많다.

무엇을 마셨는지보다 누구와 마셨는지,
얼마나 비싼 술이었는지보다 그날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어떤 잔에 담겼는지보다 그 순간의 분위기가 더 오래 남을 때가 있다.

처음에는 술을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마시는 것.
좋은 일이 있을 때 한 잔, 힘든 일이 있을 때 한 잔,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어색함을 풀기 위한 한 잔.

그때의 술은 맛보다 분위기에 가까웠다.

차가운 맥주 한 잔은 더운 날의 숨통 같았고,
소주는 누군가와 속 이야기를 꺼내게 만드는 장치 같았고,
와인은 뭔가 조금 더 특별한 날을 위한 선택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술도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색이 보이고,
향이 보이고,
잔의 모양이 보이고,
온도와 질감, 목넘김, 그리고 마지막에 남는 여운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같은 술도 잔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고,
같은 위스키도 얼음을 넣었을 때와 그냥 마셨을 때가 다르다.
같은 맥주도 어떤 음식과 함께하느냐에 따라 인상이 달라지고,
같은 와인도 그날의 기분과 온도에 따라 전혀 다른 기억으로 남는다.

잔 안에는 술만 담기는 것이 아니다.

그날의 공기,
테이블 위의 음식,
마주 앉은 사람,
나누던 대화,
그리고 그 순간의 기분까지 함께 담긴다.

그래서 술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히 맛을 평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많다.

어떤 술은 맛보다 향이 먼저 기억나고,
어떤 술은 향보다 분위기가 먼저 떠오른다.
어떤 술은 기대보다 평범했지만 이상하게 좋은 기억으로 남고,
어떤 술은 훌륭했는데도 그날의 분위기와 맞지 않아 오래 남지 않기도 한다.

In My Glass는 그런 한 잔에 대한 기록이다.

위스키, 맥주, 와인, 칵테일, 전통주.
그리고 가끔은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하지만 그날의 분위기만큼은 선명하게 남아 있는 한 잔까지.

이곳에서는 술을 전문가처럼 점수 매기려는 것보다, 내 잔 안에 담겼던 취향과 시간을 적어보려고 한다.

향이 어땠는지,
첫 모금은 어땠는지,
어떤 음식과 잘 어울렸는지,
혼자 마시기 좋은 술이었는지,
누군가와 나누기 좋은 술이었는지,
그리고 다시 마시고 싶은 한 잔이었는지.

술은 취향이 많이 갈린다.
누군가에게는 부드럽고 깊게 느껴지는 술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너무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달콤한 술이 편안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쉽게 질리는 맛일 수도 있다.

그래서 술에 대한 이야기도 결국 정답보다 기록에 가깝다.

내가 좋아했던 한 잔,
생각보다 별로였던 한 잔,
기대하지 않았는데 오래 기억에 남은 한 잔,
그리고 언젠가 다시 꺼내보고 싶은 그날의 잔.

물론 술은 즐거운 만큼 조심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좋은 술도 과하면 좋은 기억으로 남기 어렵다.
결국 중요한 건 많이 마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천천히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In My Glass에는 그런 이야기를 하나씩 남겨보려고 한다.

잔 안에 담긴 향과 맛.
그날의 분위기와 사람.
그리고 한 모금 뒤에 남는 작은 기억들.

In My Glass는 결국 잔 안에 담기는 취향들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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